등록 : 2011.01.18 19:18
수정 : 2011.01.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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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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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무상의료’를 놓고 정치권에서 복지논쟁이 뜨겁다. 한나라당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말로 민주당을 공격하고, 민주당은 너희들은 ‘부자복지’, 우리는 ‘서민복지’라면서 맞받아친다. 정치권에서 벌이는 복지정책 논쟁은 바람직하다. 복지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의 복지논쟁은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 사회적 보장의 적정 수준을 찾아가는 토론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는 한나라당과 일부 신문들이 “복지 하려면 세금 더 내야 하는데, 그래도 할래?”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으로 진행된다. 이럴 때 흔히 반면교사로 거론되는 사례가 스웨덴이나 영국이다. 신문들은 영국을 과도한 복지로 거덜난 나라처럼 부각시킨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은 무상의료 시스템을 지난 70여년간 운영해 오면서도 해마다 2~3%대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다.
지난 17일치 <조선일보>는 파리 특파원이 런던에서 만난 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말을 보도했다. 한국이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로서 스웨덴이 어떠냐는 기자 질문에 그는 “우선 한국민들이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기꺼이 내놓을 각오가 돼 있는지부터 자문해 봐라”라고 대답했다. 그를 인터뷰한 기자의 결론은 이를테면, “복지 좋아하는 사람들, 그만한 세금 낼 용의는 있어?”라는 식이었다.
조선일보는 스웨덴에서 50%의 세금이 소득계층별로 어떻게 배분되고 있는지, 그래서 복지정책의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계층의 실제 세금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를 분석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누진율이 스웨덴에 비해 얼마나 낮으며, 절세의 허울을 쓴 탈세가 얼마나 많은지를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세금을 내지 않았고, 앞으로도 세금 부과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빈곤층조차 ‘세금폭탄’을 걱정한다. 세금이란 원래 부자들이 걱정할 일인데, 신문들은 이를 모든 국민들의 걱정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신통력을 발휘했다.
신문들이 세금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18일치 <동아일보> 사설은 건강보험 적자가 누적되면 피해를 보는 쪽은 저소득층이라고 주장했다. 적자 누적으로 보험체제가 붕괴되거나, 의료서비스 불모지대가 확대되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선택의 대안이 없는 저소득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서민들에 대한 협박이나 다름이 없다. 건강보험의 소득별 누진율을 조정하거나, 국가 재정 지원을 늘려 건보 체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은 아예 논의 대상에서 빠졌다. 더욱이 현행 의료수가는 적정한가, 그리고 의사들의 고소득은 어느 선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처음부터 없다.
“세금 없는 복지는 없다”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러니 세금폭탄이 싫으면, 복지는 꿈도 꾸지 말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세금을 더 내야 할 사람들과 복지혜택을 더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계층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문은 세금과 건강보험료, 의료수가, 의사들의 소득수준을 불변의 상수로 두고,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면 적자 누적으로 보험체계가 무너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누진세율이나 직접세의 비율, 탈세의 구멍들을 불변의 상수로 두고, 세금 수입을 늘리면 모든 국민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문들은 이들 불변의 상수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끌어내야 한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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