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2.22 19:54
수정 : 2011.02.22 20:03
|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
내년에 치를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복지정책 논쟁이 벌써부터 뜨겁다. 열띤 논쟁은 유권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논쟁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논쟁에 참여한 정치인·학자들과 논쟁을 전달하고 진행시키는 언론이 좀더 정교한 논리를 펴야 한다. 하지만 특히 복지 확대에 부정적인 논자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야당이 선전하는 보편적 복지는 유럽 국가들이 이미 버린, 망국적 낡은 모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지난 17일 영국 정부가 발표한 복지개혁안을 그냥 넘길 리가 없다. 21일치 <중앙일보> 사설은 “영국이 보편적 복지의 종언을 선언”했다고 주장했다. 사설은 이어 “그런데도 야당 등 사회 일각에선 일하는 복지에는 관심이 없고, 무상 복지 주장만 되뇌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에서는 복지를 줄이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복지를 늘리자니 말이 되느냐 하는 주장이다.
영국의 복지가 얼마나 나빠졌기에 이런 주장이 나오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의 종언’이라는 말은 영국 정부가 선언한 것이 아니고, 복지개혁안을 보고 한국 언론이 내린 해석일 뿐이다. 영국 복지개혁안의 핵심은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가난한 실업자에게도 지급하던 기존의 실업수당을 단계적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12개월 실업기간 동안 일자리 제안을 한 차례 거절했을 경우 실업수당이 3개월 중단되며, 이후 12개월 내 두 번째로 일자리를 거절하면 실업수당 지급이 6개월 중단된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실업자들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상식이다. 복지개혁안이 시행되는 몇 년 뒤에도 영국의 복지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앞서 있다.
빈곤 상태에서 실업자가 되면 일자리 제안을 받고, 이 제안을 거절하고 놀아도 생활하기에 크게 모자라지 않는 실업수당이 일정 기간을 빼고는 계속 나오는 나라가 영국이다. 일자리 제안을 거부해도 실업수당을 좀 줄여서라도 주겠다는 정부가 영국 정부이다.
우리는 흔히 비교할 수 없는 사례들을 비교하는 억지 논리에 빠질 수가 있다. 유럽의 사례를 들어 우리의 복지 확대 정책을 비교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유럽은 복지를 줄이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복지를 늘리려 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이것은 유럽과 우리 복지의 현 수준은 비교하지 않고 복지 수준의 변화만 비교하는 억지 주장이다. 유럽의 복지가 100이고 우리의 복지가 30이라고 가정한다면, 유럽의 복지가 70으로 떨어지고, 우리의 복지가 50으로 올라가도 유럽과 우리의 복지 격차는 여전히 20이나 된다. 유럽의 복지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복지 수준을 낮춰야 하는가, 거꾸로 더 높여야 하는가는 자명하다.
복지정책에 관한 한 우리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유럽이 복지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복지가 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러므로 우리도 ‘복지타령’을 그만해야 한다”는 근거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집 없는 사람에게 호화주택의 화재 현장을 구경시키면서, 집을 가지면 화재 걱정을 해야 되니 집 가질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당하다.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