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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22 21:17 수정 : 2011.03.22 21:17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최근 일어난 <에스비에스>(SBS)의 ‘오보’ 소동은 에스비에스 쪽이 신속히 오보임을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치명적인 한계가 무엇인가를 언론 스스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사건은 끝났다고 하기보다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하다.

지난 6일 에스비에스 8시뉴스는 2년 전 연예계의 추한 이면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장자연씨가 남긴 자필 편지 50통을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열흘 뒤인 1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필적감정 결과 그 편지는 장씨가 쓴 것이 아니라, 장씨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전아무개씨가 2년 전 장씨의 죽음을 보도한 신문 스크랩을 참고하여 만든 가짜라고 발표했다. 에스비에스는 이날 8시뉴스를 통해 국과수의 발표를 수용하고, 시청자들과 유족에게 사과했다.

더 이상 제시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방송사가 문제를 ‘진위공방’으로 몰고 가지 않고, 자신의 기사를 서둘러 철회한 것은 좋은 태도였다. 한편으로 그것은 입수한 편지를 기사화하기 전에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못했음을 시인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에스비에스는 편지가 자필임을 믿었던 근거로, 수감중인 전씨가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230페이지에 달하는 가짜 편지를 쓸 수가 없다는 정황과 장씨의 자필이라는 전문가의 필적감정을 들었다.

그러나 면밀히 검토했다면 발견할 수도 있었던 편지 내용상의 모순을 놓쳤다는 주장이 타사 기자들을 통해 나오고 있다. 더욱이 필적감정 전문가가 “필적감정을 한 문건이 사본이며, 원본 확인이 필요하다”고 감정서에 밝혔다는 주장도 나왔다. 보도 자체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채 검찰 수사가 종결된, 장씨의 죽음과 얽힌 연예계의 비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로서 의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편지의 진위에 대한 의문들을 함께 제기함으로써 기사의 신뢰도를 높였어야 했다.

사실 확인에 소홀하다는 점이 한국 언론의 치명적인 한계의 하나다. 이런 태도 때문에 기사화 과정이 선입견에 휘둘리며, 반격이 나올 수 있는 권력층에 대한 보도는 아예 기피하고, 힘없는 사람들만(이번 경우는 장씨의 유족들) 자주 보도의 피해자로 등장하게 된다.

한국 언론의 더 큰 문제는 추적보도가 없다는 점이다. 2년 전 언론은 장씨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까지 다 보도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인, 장씨에게 부적절한 관계를 강요한 사회지도층에 대한 추적보도는 검찰 수사의 종결과 함께 끝났다. 언론이라면 검찰 수사를 전달만 해주는 보도가 아니라 독자적인 심층 추적보도를 당연히 해야 한다.

에스비에스가 보도 관계자들에게 중징계를 내린 것은 그 자체로서 비판을 받을 일은 아니다. 이들은 기사화 과정에서 필요한 사실 확인에 소홀했던 점이 있었다.

에스비에스는 이제 이들에 대한 중징계가 외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사내외의 의혹에 대답할 차례다. 그것은 기자들이 요구하는 장씨 사건 특별취재팀을 만들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려는 취재팀의 활동을 적극 뒷받침함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은 바로 에스비에스가 오보를 하긴 했지만, 기사를 보도한 취지는 정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쟁 언론들, 그리고 한국 언론 전체의 관심을 장씨 사건으로 다시 돌리는 과정이 될 것이다.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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