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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시사 프로그램 <피디수첩>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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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피디수첩’ 담당 부장, 제작진 ‘사찰’ 논란
노조 “한밤 중 사무실 들어와 피디들 책상 뒤졌다”
“감시에 스트레스 받은 피디들 정신과 상담받기도”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담당 부장이 <피디수첩> 제작진 몰래 제작진의 책상을 뒤적여 취재과정 등을 살펴보았던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일부 피디들은 담당 부장이 “피디들의 노트북을 훔쳐보고 책상을 열어보는 일이 잦다”고 증언하고 있어 이번 사건이 ‘<피디수첩> 사찰파문’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 본부가 지난 19일 발행한 노보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날 발행된 노보의 내용을 종합하면, 김철진 <피디수첩> 담당 부장은 지난 3월 부장으로 부임한 뒤 피디들이 취재를 나간 이후 피디들의 책상 위에 놓인 문서들을 뒤적거리고 심지어 노트북까지 뒤적여 보았다. 노조는 “이 문서들에 취재계획 등이 담겨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김 부장이 구체적으로 ㄱ, ㄴ, ㄷ 3명의 피디들의 자리를 뒤진 적이 있고 ㄹ과 ㅁ 피디의 책상 위 종이들을 뒤적거렸다. ㅂ 피디도 민감한 내용을 취재하려 하자 김 부장이 그의 책상 위 서류를 뒤적였다”고 폭로했다. 노조는 또 “한번은 김 부장이 모든 제작진이 퇴근한 한밤 중에 사무실에 들어와 피디들의 책상을 일제히 다 뒤진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선 피디들은 담당 작가에게 짐을 맡긴 뒤 퇴근하고 작가들도 자리를 비울 때는 메신저를 로그아웃하거나 노트북을 잠그고 다닌다”고 노조는 전했다.
피디수첩의 한 제작진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근 피디수첩 내부의 분위기를 자세히 전했다. 그는 “김 부장이 너무 제작진을 심하게 감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피디들이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 있고, 한 피디는 김 부장 얘기만 나오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불안해 하고 있다. 피디들이 또 어디로 전출되는 것 아닌지 공포심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노조는 최근 김 부장에게 피디들의 책상을 뒤진 적이 있는지 직접 물었다. 김 부장은 이 자리에서 “한 피디의 책상을 봤는데 휴직계가 놓여 있어 ‘휴직하려나?’하는 생각에 문득 휴직계를 집어 가져왔다. 책상을 뒤진 것도 혹시 담배 한 대와 라이터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부장은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피디수첩> 제작진의 취재 내용을 알아보려고 책상 등을 살펴본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김 부장은 “피디들이 어떤 내용으로 취재를 하는지 제대로 보고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책상 위에 놓인 ‘촬영 큐시트’(Cue-Sheet·진행대본)를 살펴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부장은 또 “사찰은 말도 안된다. 담당 부장으로서 제작진이 어떤 취재를 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책상을 뒤졌다는 식으로 표현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피디수첩>의 한 제작진은 “어떤 소재를 잡고 취재하는지 늘 부장에게 보고하고 있는데 김 부장은 촬영 구성안까지 일일이 보고하라고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그는 “취재 아이템을 보고하려고 하면 김 부장은 퇴근해버리거나 주말에 전화하면 전화하지 말라고 하는 등 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 팀원들의 불신이 크다”고 전했다.
노조는 김 부장이 사찰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어서 사무실 시시티브이(CCTV)의 공개를 회사에 요구한 상태다. 문화방송 시사교양국 시시티브이는 10일치 가량의 분량까지만 기록할 수 있고 이후 자동으로 새로운 녹화내용으로 덮여져 기존의 기록은 지워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7월12일부터 21일까지 10일간의 기록이 남아 있는데 노조는 회사에 더 이상의 녹화를 중지해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한 사람을 상대로 시시티브이까지 확인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일단 노조의 요구를 거절한 상태다. 강지웅 언론노조 문화방송 본부 사무처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회사가 피디수첩의 피디들을 강제 발령내는 등 피디수첩 죽이기에 나선 데 이어 제작진 사찰의혹까지 터졌는데 이러한 모든 의혹들을 뭉개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찰 행위의 배후에 경영진이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노사가 함께 참여해 진상을 규명하자”고 촉구했다. 파문은 커지고 있다. 문화방송 피디협회는 27일 성명을 내어 “강제 인사조치와 아이템 검열 논란에 이어 사찰 의혹까지 일어나고 있는 이 현실에 참담함을 느끼면서, 지금 회사가 이 의혹을 처리하는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허재현기자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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