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3 20:34
수정 : 2012.12.2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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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MBC)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로비에 세워진 로고 앞으로 방문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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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9명 등 대규모 징계 당해
시청률 추락 ‘3등 방송’ 자괴감
이대로 놔두면 새정권도 부담
공영방송 중립성 보장 촉구
서울 잠실의 <문화방송>(MBC) 아카데미에서 석 달 동안의 교육명령을 이수한 뒤 지난달 취재와 상관없는 업무에 배치된 ㄱ 기자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상태에서 더 이상의 투쟁이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그는 대선 뒤 방송 뉴스와 신문을 일체 보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인터넷에서 ‘시민방송국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다던데, 동료들과 명예퇴직하고 거기 가자는 말도 합니다. 문화방송에서 버티고 있어봐야 결국 기자가 아니라 경영진 눈치나 보는 월급쟁이밖에 더 되겠냐는 거죠.”
170일 동안의 파업, 해고 9명, 정직 82명, 감봉·감급 43명, 근신 30명, 대기발령 54명 등 징계자 227명(노조 추산 연인원), 노조를 상대로 한 195억원 손해배상 청구…. ‘공영방송 사수 투쟁’의 결과로 문화방송 사원들이 감수하고 있는 고통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문화방송 직원들은 더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ㄱ 기자처럼 “아무 것도 해결되지도,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절망하는 이들이 많다. 박 당선인은 지난 6~7월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등을 통해 ‘문화방송 사태 해결’에 나설 것처럼 입장을 밝혔지만, 김재철 사장 퇴진 등의 실제 성과 없이 ‘기대’를 저버린 바 있기 때문이다. 한 시사교양 피디는 “지난 1년 동안 혈투를 벌였지만 증명된 것은 힘있는 자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 아니냐. 김재철 사장은 결국 2014년 2월까지인 임기를 채울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작가 6명이 해고된 뒤 ‘시용 피디’와 대체 작가들이 만드는 <피디수첩>, ‘아이템 검열’ 상황에 대해 외부 매체와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기자 2명이 징계를 당한 <시사매거진 2580> 등 고사 직전의 시사 프로그램도 제자리를 찾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선 직전부터 구조조정이나 권고사직설도 돌고 있다. 사쪽은 구조조정설을 부인하지만, 해고와 대량 징계를 지켜본 직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ㄴ 기자는 “사쪽이 14일 경력기자 채용 공고를 낸 것도 파업 참가자들을 완전히 업무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일부 기자들은 “새 정권도 문화방송이 이렇게 망가진 상황에서 김 사장을 그냥 두는 건 부담스럽지 않겠냐”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꺼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낙담 쪽이다.
문화방송 구성원들은 대선 뒤로 미뤄진 보도국 인사의 방향이 사쪽의 대응 방식은 물론 박근혜 정권의 대언론 인식을 짐작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용마 문화방송 노조 홍보국장은 “보도국 주요 보직에 또다시 정권과 김 사장에 편향적인 사람들을 앉힌다면, 사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기대할 수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문화방송 구성원들은 신분 불안정뿐만 아니라 ‘3등 방송’으로 전락한 방송사의 위상, 파업 참여자와 비참여자 간의 갈등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조속히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뉴스데스크>는 지난달 방송시간을 오후 8시로 옮긴 뒤에도 시청률이 6~9%에 불과하다. 역량을 쏟아부은 대선 개표 방송 역시 조사 기관 티엔엠에스(TNmS) 집계 시청률 4.8%로 <한국방송>(14.6%)의 3분의 1, <에스비에스>(9.5%)의 2분의 1에 불과했다. ‘문화방송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파업 과정에서 해고당한 최승호 피디는 “박근혜 당선인을 찍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김재철 사장과 문화방송 사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이 많다. 이 문제가 해결 안되면 반분된 국민 감정은 5년 내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이나 시민단체 역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공영방송 중립성 확보를 여당과 박 당선인에게 계속 촉구해 관철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영하 노조위원장은 “새 사장이 온다 해도 망가진 문화방송을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조직 갈등 봉합과 화해가 핵심과제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조직의 화합을 명분으로 새 집행부 구성을 앞당길 방침이다. 정 위원장은 “현 노조 집행부 임기는 내년 2월22일까지이지만, 1월 중에 새 집행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투쟁을 했던 노조가 물러나는 만큼 사쪽도 전향적 태도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역시 대통합의 깃발을 내건 만큼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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