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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앙 동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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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조작’ 의혹 무시한 채 ‘간첩 혐의’만 대서특필
국정원·검찰 주장에 힘 실어주다 이제야 국정원 비판
‘서울시 공무원 사건’의 증거 조작 논란을 외면하며 국가정보원 입장을 두둔하던 보수 언론들이 끝내 입장을 바꿨다. 조작 의혹이 사실로 굳어져 국정원과 검찰이 막다른 곳으로 몰리자 뒤늦게 책임 추궁에 나섰다. ‘공안 몰이’에 편승한 언론의 태도가 갈지자 행보를 낳은 것이다.
■ 증거 조작 논란에도 ‘간첩 혐의’에만 무게 <동아일보>는 지난해 1월21일, 탈북 뒤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우성씨가 구속됐다는 사실을 최초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 사건을 바탕으로 세 차례에 걸쳐 ‘탈북자 간첩’ 기획 시리즈를 연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이와 비슷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 신문들은 1심 재판 과정에서 불거진 증거 조작 의혹은 대체로 외면했다. 국정원이 주요 증인으로 내세운 유씨의 여동생이 “회유·협박에 허위로 자백했다”고 증언했고, 국정원이 낸 사진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유씨가 1심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을 때에도 이 신문들은 짧게 전했을 뿐이다.
올해 2월14일 항소심 재판부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유씨의 간첩 혐의 증거로 제출된 서류 3건은 위조된 것’이라는 회신을 받고 검찰이 진상 조사에 돌입하면서 조작 의혹은 본격화됐다. 조·중·동 등은 “절차상 하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검찰과 국정원 쪽의 주장을 인용해, 중국 당국과 국내 정보기관이 동북 지역 정보전에서 힘겨루기하는 와중에 위조 논란이 불거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증거 조작 가능성이 크게 떠올랐는데도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한 셈이다.
■ 적극적 ‘물타기’ 시도까지 보수 신문들은 이후 진상 파악에 주력하기보다는 국정원과 검찰을 감싸는 ‘논리’까지 내놓으며 권력의 감시자가 아니라 ‘대변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국정원 주장을 제목과 기사 내용으로 비중 있게 인용했다. 2월18일치 기사에서 “국정원이 (…) 정식 사법공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국민의 신변과 관련된 정보를 구해 한국 법원에 제출한 데 대해 중국 정부가 ‘경고’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틀 뒤 “출입경 기록 원본 2개, 관인 위치 다른 건 한꺼번에 발급받아 도장 각각 찍은 탓”이라는 검찰의 해명을 제목으로 뽑았다. 같은 날 기자 칼럼은 증거 조작 논란이 “정략적 공방”이라고 규정했다. 또 “공개 공방을 벌이면서 그동안 닦아놓은 인적 정보망이 훼손되고 있다”는 ‘공안 당국자’의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유씨의 간첩 혐의를 추가로 입증하려는 데 주력했다. 같은 달 24~25일에는 유씨를 신고했다는 탈북자가 “유씨는 간첩이 맞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이 신고자의 주장은 이미 1심 재판에서 배척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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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씨(왼쪽에서 넷째)가 2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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