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12 15:38
수정 : 2014.11.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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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의 애니다큐 ‘국정원 거짓말 탐지기를 속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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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를 간첩으로 지목한 여동생. 간첩은 맞지만 ‘필요한 순간에 기억을 없앨 수 있다’는 약물을 이용해 거짓말 탐지기를 무사 통과했다는 탈북 여성.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놓여나자마자, 자신의 ‘자백’을 뒤집었습니다. 국정원과 두 사람의 주장은 엇갈립니다.
여러 언론이 이런 ‘반전’의 막전막후를 다뤘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탐사보도 매체인 <뉴스타파>는 ‘자백 이야기’(2013년 9월20일), ‘국정원 거짓말 탐지기를 속인 여자’(2014년 7월3일)란 제목의 조금 ‘특별한’ 다큐 2편을 선보였습니다. 50여분 짜리 프로그램의 30~50%를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레이션로 채운 겁니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애니 다큐’는, 1982년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학살을 다룬 <바시르와 왈츠를>(아리 폴만·2008) 같은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뉴스타파>가 이 방식을 시사 다큐에 전격 도입한 것입니다.
시나리오·연출을 맡은 최승호 앵커는 “사건을 더 쉽게 전달해야겠다는 의도가 있었고, 합신센터나 법정에서 일어난 일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아서” 애니를 택했답니다. 애니 활용이 스튜디오·배우가 필요한 재연보다 제작비도 덜 들어간다고 해요.
최승호 앵커의 첫 구상은, 법정에서 녹음된 음성 파일을 애니에 고스란히 입히는 방식이었답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많아서 접고, 대신 증언·기록에 바탕한 대사를 성우들이 읽도록 했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어요. 첫 녹음 때 국정원 직원을 맡은 성우의 목소리에 ‘악함’이 묻어나서, ‘드라이하게’ 재녹음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자칫 인물을 희화화한다고 여겨질 수 있기에, 각자의 주장을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신경 쓴 거죠.
애니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실제 인물의 싱크로율은, 인물의 신원 노출이 가능한지에 따라 다릅니다. 인물별로 ‘닮게도, 안 닮게도’ 그린 거죠. 인물을 범죄자 취급하는 듯한 모자이크 대신, 캐릭터라 해도 눈코입이 있는 얼굴로 접하니 ‘사람 냄새’가 납니다. 신원 보호도 하고 이야기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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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의 애니다큐 ‘자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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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작업은 외주업체인 ‘유레루애니메이션’ 소속 감독과 애니메이터, 사운드 디자이너 등 6명이 참여했습니다. 제이(별칭) 감독은 “권력비판과 사회고발의 의미에다가 미디어 아트적 속성이 결합하니 (다큐) 장르가 풍부해지는 것 같았다”고 하네요. 애니메이션 비중이 높은 1탄에 견줘, 2탄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이 많아진 이유는 제작기간을 한 달에서 열흘 아래로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대요.
<문화방송>(MBC)에서 <피디수첩> 등을 연출하다 해고된 최승호 앵커는 “지금 공영방송에선 국정원 비판이란 소재 자체를 다루기 어렵고, 애니 도입은 상상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한국방송>(KBS)의 <추적 60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전말’ 편(2013년 9월7일 방송)을 내보내며 방송 분량의 절반을 국정원 주장에 할애했음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경고)를 받았습니다. <피디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SBS)에서는 이런 사건들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만화 저널리즘’ 분야를 일군 미국 언론인 조 사코가 떠오릅니다. 그는 2011년 출간한 책에서 “본질적으로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매체인 만화가 가지는 축복이라면, 내가 나 자신을 기존 언론의 틀에 가두지 않아도 되게끔 해주었다는 것”이라면서, 저널리즘은 ‘기계적 균형’이나 ‘객관성’의 신화를 맹신하는 대신 약자의 편에서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사 다큐에 애니 좀 쓰면 어떻습니까. 저널리즘의 본분만 지킨다면 말입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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