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9 17:01
수정 : 2005.09.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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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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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간접광고에 대한 방송사 쪽의 집착이 매우 강해 보인다. 노조도 일정하게 동조하는 분위기다. 간접광고가 더 나은 콘텐츠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로 대 사회 설득에 나섰다. 그러면서 중간광고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우호적이다. 다만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보수 신문이 예상대로 반대에 나섰다. 일제히 사설의 포문을 열었다.
“문화부는 작정하고 방송광고 대행업을 차렸나,” “시청자를 더 화나게 하는 TV 간접광고 허용,” “‘협찬 노출’로 둔갑시킨 TV 간접광고”라고 목청을 높인다. “외설과 패륜으로 ‘쓰레기상자’ 돼가는 텔레비전 간접광고의 피해자는 시청자”라고 질타한다. “시청자 주권이나 사회 공익”을 도외시 한, “나팔수 역할의 방송사들에 대한 또 다른 은혜 베풀기”라고 흥분한다. 공공성을 더욱 훼손시킬게 뻔한 “방송사 배불리기”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문화부는 정해진 게 없다고 해명에 나서고, 방송위는 좀더 신중히 고려할 사항이라며 넘어간다. 시청자만 빼고, 모든 당사자가 나와 이야기를 쏟아내는 간접광고 말 사태다. 부재한 시청자의 이름만 다투어 치켜세우는 묘한 위선의 쇼가 벌어지고 있다.
보수신문들이 우선 그렇다. 자기 지면의 절반 이상을 광고로 도배해 스스로 광고지로 전락한 게 오늘날의 신문이다. 광고는 신문의 생명선이다. 결국 방송에 더는 돈줄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게 결정적 이유이면서, 엉뚱하게 시청자를 부추긴다. 정직하지 않은 언술이다. 방송사도 다를 바 없다.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없고, 결국 위협 받고 손해 보는 것은 시청자의 볼 권리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수입 감소에 따른 경영악화의 문제를 간접광고로 해소코자 하는 이기 타산적 발상을 보편적 이익으로 위장하고자 한다.
가장 큰 책임은 이런 사태를 초래한 정책 당국에 있다. 지금의 광고 문제는 채널과 매체 난개발의 불가피한 후유증에 불과하다. 일시적 경기부진의 탓이 아닌, 훨씬 장기지속적인 구조의 산물이다. 이를 무시한 상태의 소위 광고정책이라는 것은 임기웅변의 단견에 불과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복잡한 현실이 그런 식으로 쉽게 수습되기 만무하다. 광고를 둘러싼 싸움이 그치지 않고, 난리가 앞으로 더욱 자주 크게 터질 것이다. 그 피해자인 시청자를 구제·보호하기에 방송위원회는 한마디로 너무 무기력하다.
정말 정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모두를 위한다는 위선을 걷어치우고, 자기 처지에서 정확히 말하자. 방송사는 방송사, 노조는 노조, 신문사는 신문사, 정부는 정부의 이해타산을 따져 나서라.
바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당당한 대화 당사자로서의 자격을 시청자는 요구하는 것이다. 무늬나 말만 주권자 아닌, 실질적 주권자로서 발언할 권리와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시청자에게는 간접광고를 포함한 광고정책, 매체정책의 조절·재구성 방식과 관련해 여타 당사자들의 정확하고 정직한 견해를 청취할 권리가 있다. 그렇게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춘 상태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합리적 정책을 다듬어 낼 권리가 있다. 만약 이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된다면, 시청자가 들러리가 아닌 판단의 주체로서 확실히 인정된다면, 간접광고 논의는 누가 언제 어떻게 시작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시청자를 말하지 말고, 시청자와 대화하라.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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