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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공짜신문은 환경공해다” |
전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다. 전철역 입구마다 여러 종류의 공짜 신문이 기다리고 있고,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출근길에 집어 들고 전철을 타고 신문을 읽는다. 돈을 받지 않고 나눠주는 신문이라 부담없이 읽고 전철역 선반에 올려놓거나 쓰레기통에 버린다. 공짜 신문’의 생명은 전철역 한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짜 신문은 정말 공짜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보자.
1. 기사 가치가 없다. 단지 '공짜'라는 것 때문에 아무렇게나 집어들고 읽는 신문이 공짜 신문이다. 공짜 신문을 만드는 기업에서 왜 돈을 받지 않는 신문을 만들었을까?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들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이 없는 사업을 하는 사람은 정신병자거나 바보 아니면, 자선사업가 뿐이다. 그렇다면 공짜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신병자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고, 자선사업가도 아니라면-당연히 아니다-이유는 딱 한 가지. 바로 이윤이 있기 때문이다.
공짜 신문을 만드는 과정은 신문에 광고를 실어 광고비를 받아 신문 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익의 전부가 광고비에 있다는 것이다. 광고를 많이 싣고, 돈을 많이 벌려면 광고주의 입맛에 맛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신문의 내용은 '독자'의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기사의 내용을 보면, 마치 기사처럼 쓴 광고들이 거의 전부인 것을 알 수 있다. 광고주는 자신이 돈을 낸 만큼, 광고 효과가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신문이 더 많이 보급될 수 있도록 더욱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요구한다. 이것을 [공짜 신문]에서 충실하게 반영한다.
공짜 신문에 독자는 없다. 그저 심심풀이로 잠깐 보고 내버리는 쓰레기 종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공짜로 뿌려지는 이런 신문 아닌 신문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공짜 신문의 대부분이 선정적인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고, 연예, 방송의 가십 기사와 노출이 심한 여자의 사진이 빠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는 스포츠 신문과 다를 것이 없다.
2. 환경을 해치는 원인이다. 공짜 신문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 뿐이지, 신문이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돈을 받는 신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공짜 신문 하나가 하루에 약 40만 부를 발행한다고 한다. 5가지 정도의 공짜 신문이 있으니 하루에 200만 부의 신문이 만들어져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재활용이 된다고는 하지만, 재활용 이전에 그 신문을 만들기 위해 지구에서 사라지는 나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쯤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산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베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무차별로 버려지는 종이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 지구의 환경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짜 신문을 만들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화물선의 운항-펄프 가공-종이 제조-인쇄-재단 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 생산적인 내용들과 무가치한 노동력을 생각해 보자.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 먹고 살고 있다. 하지만, 비생산적이고 무가치한 노동이 아닌, 다른 생산적인 노동으로 먹고 살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과정들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무차별적인 경쟁과 무계획적인 생산으로 무수한 소비재들이 만들어지자마자 바로 쓰레기통이나 재활용 공장으로 직행한다. 유료 신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그렇게 버려지는 필요없고, 쓸모없는 소비재를 만드는 비용은 곧바로 국민, 시민, 노동자 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물건에는 세금이 붙어 있고, 적정한 이윤이 보장되어 있다. 이것은 불필요한 수량을 더 많이 만들고, 그것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까지를 소비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악랄한 제도 때문이다.
3. 제품에 광고비가 포함되어 있다. 공짜 신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지면에서 광고를 보게 된다. 돈을 내고 사보는 신문에서도 광고 비중이 적게는 40%에서 많게는 60%까지 있는데, 공짜 신문이니 어련하겠는가? 아마도 80%-90% 정도가 직접, 간접 광고라고 볼 수 있다. 광고주가 돈을 내서 광고를 실을 때는, 그만한 이윤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구입하는 모든 물품과 서비스에는 광고비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공짜'가 많아질수록 소비자가 부담하는 광고비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소비자는 당장 돈을 내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어디에서 자신이 광고비를 포함한 물건값과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4. 책을 읽지 않는다. 공짜 신문이라서 전철 타는 시간만 대충 읽고 버린다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책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물론 공짜 신문이 없었을 때도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공짜 신문이 생기고 나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공짜 신문에서 깊이 있는 교양과 전문 지식을 배울 수는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의 축적을 짧은 시간에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훌륭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일천한 경험과 지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물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일 수는 있다. 지혜로운 것이 곧 많은 지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교양인이라면 자신이 갖춰야 할 일정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질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차라리 책을 읽지 않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공짜 신문을 읽어서 받아들이는 무수한 잡식성 정보와 왜곡된 내용으로 자신의 교양이 더욱 천박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짜 신문에서 얻을 것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식은 그런 하찮은 신문보다는 책 속에서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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