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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송건호 언론상’수상자로 선정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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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겠지만, 그의 이름은 강준만이다. 그 사람이 제4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게 됐다.
송건호 언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정경희, 위원 이해동 김태진 방정배 이명순 변동현 김영석)는 23일 제4회 수상자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강 교수가 “1997년 <인물과 사상>을 창간해 ‘언론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며 무소불위의 언론을 견제했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부당한 차별’과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며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희망했다”며 “혼자 힘으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됐고, 실명비판의 문화 속에서 생산적인 논쟁과 토론이 성숙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으며, 지식인의 양심과 책무를 일깨웠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라는 물음으로 수상 소감의 운을 뗐다. 숨가쁘게 ‘성역과 금기’에 도전해왔던 이제까지의 태도와 다르게 강 교수는 ‘겸손’의 코드로 세상을 꿰려 하고 있었다. 전주시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211호 연구실에서 만난 강 교수는 “의례적 겸손, 처세술로서의 겸손이 아닌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질로서의 겸손을 송건호 선생에게서 배웠다”며, 이것이 처음에 고사하려던 이 상을 받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이유라고 밝혔다. 동시에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맹렬한 자기성찰을 촉구했다.
왜 ‘겸손’인가? 강 교수가 지천명에 이르렀기 때문인가?(강 교수는 양력 1956년 1월생이다) “사람들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일을 할 때는 좋은 뜻과 열망이 앞선 나머지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은 자신의 ‘인정 욕구’나 ‘도덕적 우월감’을 자제하는 겸손을 보여야 자신의 소신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텍스트보다 컨텍스트(맥락)에 주목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다.”
강 교수의 태도는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유럽식 세계관에서 벗어나 “덕이 너를 아름답게 하리라”라고 말하는 유가적 가치를 두둔하는 듯했다. 심지어 강 교수는 최근 <한국일보>에 “‘싸가지’가 ‘메시지’다”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 역시 소통하기 위해서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요지를 담고 있다.
강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겸손’의 코드에서 실패하고 있다”며 노 정부에 대한 애증을 숨기지 않았다. “왜 수구 기득권 세력이 미친 듯 악을 쓰는가? 나는 한 이유가 노 대통령이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그들을 내려다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지사지해보면 안다. 노 대통령이 개혁에 성공하려면 자신보다 일을 앞세워야 할 것이고, 빛을 내기보다 욕을 먹어야 할 것이다.”
최근 강 교수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지식인 참여’와 관련해 조기숙 대통령 비서실 홍보수석과의 한바탕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논쟁은 조 수석이 전주를 찾아와 산행 토론을 하며 마무리됐지만, 그의 비판은 그를 잠재적 ‘우군’으로 여겨온 집권 세력에게는 매우 곤혼스런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강 교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난 1~2년 동안엔 자의가 아닌 상황에 의해 퇴출당했다. 그가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문제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란다. “민주당의 문제는 지지했던 사람들이 성찰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뛰쳐나오면서 사람들은 그럴 기회를 잃었으며, 동시에 면책받았다. 그런 열린우리당이 예전의 민주당과 얼마나 다른가? 열린우리당은 정치에 대한 혐오와 염증을 이용해 위선을 저질렀다. 민주당처럼 열린우리당도 대통령의 당일 뿐이다.”
한편으로 그의 이런 일련의 활동에 대해 최근 비평가 김규항씨는 애정이 듬뿍 담긴 비판을 보내기도 했다. 김씨는 “강 교수가 보수 정당들을 출연자로 하는 기만적인 쇼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 돌아오길 기대한다”며 “비정규직, 빈곤의 확대, 공공영역의 사유화, 제국주의 침략 전쟁 동조 등 끝없이 나열되는 이 참혹들에 대해 행동해달라”고 주문했다.
언론권력을 줄기차게 비판해온 언론학자로서 또 ‘안티조선’을 이끌었던 언론운동가로서 그가 보는 한국 언론계의 과제는 무엇일까? 그는 “근본 문제는 조·중·동이 아니라, 한국 역사에서 구축돼온 강고한 정치·경제 분리주의”라고 짚었다. “한국 독자들은 투표장에서 김대중·노무현을 찍으면서 집에서 조·중·동을 보고 부동산·주식 투자, 과외교육에 몰두한다. 이것은 이른바 민주·개혁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들의 경제적 보수성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와 같은 개혁 언론이나 개혁·진보 세력들이 스스로 ‘경제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중동이 제시하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 미래를 대체할 비전과 방향을 진보 세력이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문·사회과학도들이 경제 문제에 무지한 상태로 경제를 부정부패의 온상, 악의 근원으로만 바라보는 한 이런 한국 사회의 이율배반은 계속될 것이라고 비관했다. 이를테면 그는 <한겨레>가 저항자로서의 생각을 버리고 주도자로서 책임감있게 현실에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의 말은 처음의 ‘겸손’을 상기시켰다. “나는 책을 쓸 것이다. 과거처럼 깊이 개입하지는 않고 일반적인 차원에서 해법을 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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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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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반민족적 족벌언론에 사망을 선고하고 풀뿌리 민주언론을 통한 언론개혁을 염원하는 만장이 옥천 언론문화제 들머리를 수놓았다. (가운데) 옥천 언론문화제에서는 이 지역 출신인 〈한겨레〉 초대사장 청암 송건호 선생을 추모하는 사진전도 열렸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송건호 선생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오른쪽) 옥천 언론문화제에서 ‘조선일보’ 사망 상주들이 축하 노래를 하며 문상객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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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교수 송건호 언론상 수상 소감문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무엇이 또 있을까요?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격려와 채찍질의 뜻으로 알고 상을 받겠습니다.” 늘 다른 분들 상 받는 구경을 하면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을 받을 땐 그런 말을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이제서야 그 말뜻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만, ‘격려와 채찍질’의 뜻이라 하더라도 이 상은 제게 과분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앞섭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상을 받지 못하는 저의 심정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송건호 선생님을 개인적으론 알지 못했습니다만, 그 분의 사회적 의미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한국현대사와 언론사 공부를 할 때엔 그 분은 통찰을 제시해준 역사학자로 나타나셨고,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 거듭 나기를 열망했을 땐 온몸으로 그 길을 제시해준 언론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지식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 앞에선 그 분은 범인으로선 너무도 따르기 어려운 길을 보여주셔서 많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거나 좌절케 했을 것입니다.
청암언론문화재단의 발족 선언문 제목은 “송건호 바이러스에 감염되자”였습니다. 과연 어떤 ‘바이러스’를 말한 것이었을까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해석하는 ‘송건호 바이러스’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겸손, 겸손, 겸손입니다. 의례적인 겸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처세술로서의 겸손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뼈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질로서의 겸손입니다.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님은 과거 송건호 선생님의 강연 활동을 회고하면서 “개인적으로는 20~30년 어린 후배들에게도 늘 형이라는 존칭을 쓸 정도로 깍듯하고 부드러운 분이 어떻게 저처럼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놀라곤 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도 송건호 선생님을 몇 번 뵈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송 선생님의 겸손에 놀랐습니다만, 전 그 땐 그 겸손의 가치와 무게를 잘 몰랐습니다. 그저 보기 드문 미덕을 갖고 계시는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후 김대중정권이 들어섰고 노무현정권도 탄생했습니다. 이 두 정권의 핵심 세력은 모두 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고생했던 분들입니다. 저는 두 정권이 잘 되길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실망스러운 일들이 벌어졌고, 저는 사회과학도의 자세로 그 원인이 무엇일까 내내 고민해 보았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겸손이었습니다. 두 정권 모두 겸손하지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겸손은 정말 어려운 겁니다. 성경에 겸손을 역설한 구절이 32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겸손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우면 그랬을까요.
우리는 송건호 선생님이 온몸으로 ‘언행일치’를 실천하셨고, 주변의 그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옳게 사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가시밭길을 걸으셨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실했고 용감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역정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겸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도 ‘겸손 코드’로 보고자 합니다.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해방정국의 역사도 당시 모든 이들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후로도 그런 ‘겸손 부재’의 역사는 계속 반복되었고, 오늘의 상황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뜻과 열망이 앞선 나머지 겸손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일을 할 때엔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조차 내부 성원들 사이에서 묵묵히 빛이 안나는 곳에 임하면서 ‘겸손 바이러스’로 결속을 다져주는 사람이 없다면 출발조차 기대하기 어렵지요. 송건호 선생님의 업적은 바로 그런 역할에도 있었던 게 아닐까요?
겸손은 사회과학적 개념은 아닙니다. 유능한 사회과학자일수록 그런 개념은 피하려고 하지요. 그러나 저는 서구 사회과학의 틀과 개념만으로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이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의 ‘인정 욕구’나 ‘도덕적 우월감’을 자제하는 겸손을 보일 때에 비로소 자신의 소신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건 서구 사회과학에선 찾기 어려운 답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도 다른 사람의 비판에 대해 속이 상하거나 분노했을 때 그 이유를 잘 뜯어보면 그건 제가 겸손하지 못한 탓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에 대한 비판을 권리로만 알고 남의 비판은 의무로 받아 들이지 않는 이중성이 문제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현미경으로 관찰하려 들면서 자신의 허물은 망원경으로도 보지 않으려는 독선과 오만이 문제였던 겁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송건호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인은 형평의식이 매우 강한 사람들입니다. 텍스트보다는 컨텍스트에 더 주목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아무리 옳은 주장을 펴더라도 그 주장을 펴는 사람의 자격과 행실을 따집니다. 텍스트에만 주목해달라는 주문은 무력합니다. 텍스트 생산자의 독선과 오만은 텍스트를 죽입니다. 겸손으로 무장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성실과 용기와 책임감도 같이 생겨납니다. 사회 진보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무기로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무엇이 또 있을까요?
저는 그게 바로 ‘송건호 바이러스’의 정체라고 믿습니다. 저는 ‘송건호 겸손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퍼지길 바랍니다. 앞으로 그 일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감히 이 상을 받습니다만,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어쩌질 못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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