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 조 · 단역 배우들 출연료 ‘시간꺾기’로 10~40% 삭감 지급
취재 들어가자 출연료 인상 등 ‘단역출연자 권리 위한 개선 방안’ 내놔
tvN과 OCN 등 총 16개 채널을 운영하는 CJ E&M은 드라마 분야에서 가파르게 성장하며 지상파를 위협하고 있다. 광고 매출은 이미 지상파를 따라잡았고 2017년 1~3분기 영업이익은 무려 597억원에 이른다. 이런 막대한 영업이익의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한겨레21>은 CJ E&M이란 거대 방송사와 이곳에 드라마를 납품하는 외주제작사들이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조연과 단역 연기자의 출연료를 ‘시간꺾기’ 방식으로 깎아 지급해왔음을 확인했다.
막대한 영업이익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
<한겨레21>은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CJ E&M이 그동안 방영한 여러 드라마의 실제 편성시간과 조·단역에게 지급된 출연료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CJ E&M 드라마에 출연한 조·단역들이 방송계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기준보다 10~40% 출연료를 덜 받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출연료 ‘삭감 지급’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을까.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의 출연료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정해진다. 먼저 주연과 조연급 배우 일부는 ‘회당 ○○○○만원’으로 정해진 출연 계약을 맺는다. 반면 일부 조연급 배우와 단역은 편성시간(방영시간+광고시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받는다. 노동시간이 아닌 편성시간 기준으로 출연료를 정산받는다는 점이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방송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주우 한국방송연기자노조(이하 한연노) 사무국장은 “배우들의 경우 촬영시간보다 대기시간이 훨씬 길고 정확한 노동시간을 계산하기 어려워 수십 년 전부터 이런 기준으로 출연료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방송사는 회당 출연료 계약을 맺지 않는 조·단역들의 출연료 정산을 위해 나름의 기준표를 만들어 적용해왔다. 방송사들은 연기자의 등급을 6~18등급(1~5등급은 아역)으로 나눈 뒤, 각각의 편성시간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회당 출연료를 책정해두고 있다. 등급은 연기 경력과 인지도 등을 바탕으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연기자들과 협의해 정한다. 등급 연기자들은 자신이 몇 등급에 해당하는지는 알지만, 정확한 편성시간은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출연 계약이 문서가 아닌 구두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는 한연노와 2011~2012년 임금협상을 벌여 정한 출연료 기준표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한연노와 임금협상을 하지 않은 CJ E&M 역시 지상파 방송이 따르는 기준표를 준용해왔다.
2014년 tvN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미생>의 사례를 보자. <미생>에 출연한 조·단역 연기자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이들은 업계 관행에 따라 ‘KBS 탤런트 및 코미디언 출연료 기준표’(이하 기준표)를 토대로 출연료를 받았다. 기준표를 보면 방송사들은 드라마의 종류를 ‘일일연속극’ ‘주간·주말연속극’ ‘미니시리즈·특집극’ 등으로 나누고, 연기자가 이 드라마에 출연할 때 자신이 속한 등급과 편성시간에 따라 얼마의 출연료를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해두었다. 이때 편성시간은 앞서 소개했듯, 드라마의 순방영시간에 광고시간을 더한 것이다. <한겨레21> 취재에 응한 연기자들은 “출연료가 지급되기 전까지 정확한 출연료를 알지 못한다. 추후 계좌에 찍힌 액수를 보고 방송사가 기준으로 삼은 편성시간이 얼마인지 추정해볼 뿐”이라고 말했다.
|
드라마 ‘미생’. 사진 tvN 제공
|
편성시간과 방영시간 차이 악용
이 지점에서 조·단역들의 출연료를 깎는 ‘시간꺾기’가 나온다. 2014년 10월부터 12월까지 20부작 방영된 <미생>의 편성시간은 평균 84분이었다. 기준표에 따라 연기 경력이 15년 정도 되는 12등급 조·단역 연기자는 회당 139만600원(90분 기준)을 받아야 했지만, 실제 지급된 액수는 60분 분량의 출연료 92만7070원이었다. ‘시간꺾기’로 방송사 또는 제작사가 회당 46만3530원의 출연료를 아낀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CJ E&M 드라마는 최근 4~5년간 조·단역 연기자의 출연료를 10~40%씩 덜 지급해왔다.
다른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2014년 이후 방영된 CJ E&M의 드라마 상당수가 편성시간이 실제 지급된 출연료 기준보다 10~15분가량 길었다. 예를 들어 2016년 방송된 <혼술남녀>와 2017년 방송된 <시카고 타자기>는 60분 기준으로 출연료가 지급됐지만, 평균 편성시간은 각각 74분과 75분이었다. <도깨비>와 <비밀의 숲>은 70분 기준으로 지급됐지만, 편성시간은 각각 86분과 80분이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90분 기준으로 지급됐지만, 실제 편성시간은 102분이었다. <치즈인더트랩>, <시그널>, <이번 생은 처음이라>, <막돼먹은 영애씨 16>도 비슷한 상황이다.
CJ E&M은 편성시간을 따로 공개하지 않아 드라마의 순방영시간에 광고시간 10분을 일괄적으로 더해 추정했다. 그렇기에 실제 편성시간과는 2~3분 정도 오차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CJ E&M 또는 외주제작사가 조·단역 연기자에게 덜 지급한 출연료의 총액은 해마다 수억~수십억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CJ E&M은 이같은 <한겨레21>의 지적에 편성시간이 아닌 방영시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지급해도 위법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CJ E&M 관계자는 “편성시간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지상파에서 만든 기준(광고시간 포함 계산)대로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는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광고시간을 빼고 드라마의 순방영시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계산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는 얘기다.
|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티브이엔 제공
|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자료를 보면, 편성시간을 계산할 때 광고시간을 포함하도록 했다. 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6 알기 쉬운 방송광고 모니터링 기준’ 자료에서 편성시간을 “‘해당 방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고지(NEXT)’가 시작되는 시간부터 ‘다음 방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고지(NEXT)’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 광고시간 등을 포함”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CJ E&M은 <한겨레21> 취재가 이어지자 순방영시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지급해온 방송사의 행태가 업계의 오랜 관행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음을 인정했다. 방송사는 이후 자사 드라마에 출연한 조·단역 연기자의 출연료 지급 현황을 파악했고, 1월24일 이들의 처우 개선안이 담긴 ‘단역 출연자 권리를 위한 개선 방안’을 만들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개선 방안에는 크게 다섯 가지 내용이 포함돼 있다(아래 박스 참조). 우선 순방영시간이 70분인 드라마를 만들 때 지상파 3사가 편성시간 80분 기준으로 주는 출연료보다 더 높은 출연료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또 외주제작사나 캐스팅디렉터가 단역 출연자와 계약할 때 서면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연기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수수료를 낮추도록 했다.
“캐스팅 디렉터 갑질도 근절하겠다”
‘캐스팅디렉터’는 드라마를 만들 때 조·단역 연기자를 제작사와 연결해주는 이를 말한다. 방송업계 일각에선 생계 유지와 연기 인생을 이어가기 위해 드라마 캐스팅을 절실히 원하는 조·단역 연기자에게 캐스팅디렉터가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며 ‘갑질’을 한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또 그동안 구두로 이뤄졌던 출연 계약을 반드시 서면으로 하게 한 것도 조·단역 연기자들의 오랜 요구를 받아들인 긍정적인 안으로 평가된다.
CJ E&M 관계자는 “그동안 ‘관행’이라 여겨왔던 부분 가운데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끊임없이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는 드라마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단역배우들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호를 위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고 밝혔다.
변지민 김완 <한겨레21> 기자
dr@hani.co.kr
CJ E&M ‘단역 출연자 권리를 위한 개선 방안’ (2018년 1월24일)
1. 외주제작사/캐스팅디렉터와 단역 출연자 간 서면 용역 계약서 체결 100% 의무화
2. 실RT(Running Time) 70분물 기준시, ‘방송 편성시간 80분+알파(α)’의 출연료 지급(실RT 60분물 이하 또는 실RT 90분물 이상의 경우, 단역 출연자와 별도 논의 뒤 계약)
3. 외주제작사와 캐스팅디렉터 간 계약 체결과 용역 비용 지급 의무화
4. 위 3번 항목의 용역 비용 지급 의무화에 따라 캐스팅디렉터가 단역 출연자에게 받는 수수료 요율을 낮추도록 권고(현재 20~30% 수수료)
5. 위 1·4번 계약서에 단역 배우가 캐스팅디렉터에게 주는 수수료 요율 구체적 명기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