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2 15:52
수정 : 2018.03.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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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언론은 좋은 독자가 있을 때 가능하기도 하다. 뉴스 바르게 읽고 활용하기를 가르치는 뉴스리터러시 교육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해 9월 부천 상원고 2학년 학생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에서 활동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상원고 권혜령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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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의 눈】 줄리아 카제의 <미디어 구하기> 그 이후
크라우드 펀딩, 세제 혜택 노력하는 프랑스 언론과 정부
한국 언론, 고품격 콘텐츠 늘리고 독자와 소통부터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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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언론은 좋은 독자가 있을 때 가능하기도 하다. 뉴스 바르게 읽고 활용하기를 가르치는 뉴스리터러시 교육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해 9월 부천 상원고 2학년 학생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에서 활동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상원고 권혜령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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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에 번역되어 출간된 프랑스 미디어학자 줄리아 카제의 <미디어 구하기>는 언론계에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다수 언론사가 생존을 위해 저널리즘을 죽이는 아이러니한 현실에서 그가 제안한 새로운 모델은 상당히 파격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구하기>의 프랑스어판
은 2015년 초에 출간됐고, 그 이후 프랑스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카제가 이 책에서 저널리즘을 구하기 위한 해법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제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립 언론의 창간뿐 아니라 재정 위기에 빠진 기존 미디어를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프랑스에서 크라우드 펀딩이 시선을 끌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됐다. 2010년 본격적으로 등장한 크라우드 펀딩은 빠르게 성장했다. 2012년 28개 였던 크라우드 펀딩 전문 플랫폼이 2015년에는 150개로 늘어날 정도였다.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윌윌>(Ulule)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저널리즘과 출판 분야에서 300만 유로 이상을 모금했고, <키스키스방크방크>(KissKissBankBank)는 저널리즘 분야에서 130만 유로 이상을 모금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혁신적인 프로젝트의 자금이 모집되고, 언론사 설립 자본금 투자도 늘어남에 따라 이 모델은 책임감 있고 연대적이며 보완적인 대안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특히 신생 매체에게 이 방식은 초기에 필요한 자금을 해결하고, 무시할 수 없는 독자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롱 폼 저널리즘’(스토리텔링 방식의 긴 기사를 위주로 한 저널리즘)을 표방한 주간지 <엡도>(Ebdo)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40만 유로 이상의 초기자금과 6천여명의 예약 독자를 확보했다. 사회·문화 분야의 전문 격주간지인 <소사이어티>(Society)는 5만 유로의 운영자금과 936명의 예약 구독자를, <리베라시옹> 출신 기자들이 만든 온라인 독립 언론 <레주르>(Les Jours)는 8만 유로와 1500명의 예약 구독자를 모집했다.
재정 위기에 빠져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가 된 기성 언론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한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니스 마탱>(Nice Matin)을 들 수 있다. 그 이름처럼 니스와 그 주변 지역을 아우르는 신문인 <니스 마탱>은 2014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37만6천 유로를 모금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재정 위기에서 벗어난 이 신문은 ‘솔루션 저널리즘’을 통해 1년 만에 구독자가 70%가량 증가하는 쾌거를 이뤘다. <니스 마탱>이 말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5W 법칙에 '그래서 지금은?'이라는 질문을 더 추가해 보도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지역의 우울한 소식들을 전하는 것에서 벗어나 현장 저널리즘과 데이터를 통해 이 지역의 문제를 파악하고, 질문을 하고 해결방안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니스 마탱>은 프랑스 ‘솔루션 저널리즘’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저널리즘 영역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언론지원 정책이나 관련법 역시 이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2015년 4월 17일 공표된 언론현대화법을 통해 독자나 일반 기업이 언론사를 후원하는 경우, 소득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마련한 것이다. 신생매체와 언론사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쉽게 출현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은 다른 한편으로 ‘연대적 언론 기업’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창설했다. 정치 및 종합 정보에 중점을 두는 언론사로, 시민의 판단을 도울 수 있도록 항구적이고 지속적으로 국내 혹은 국외의 정치 및 일반 정보 및 논평을 제공하는 경우, 연대적 언론 기업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언론사들에 투자와 자발적 후원을 고무하는 조세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법 덕분에 독자와 일반 시민은 언론사나 언론의 다원주의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공익단체를 후원하는 경우 소득세를 감면 받을 수 있다. 일반 언론사의 경우에는 30%, 연대적 언론 기업에 후원하는 경우에는 50%를 감면해준다.
그러나 <미디어 구하기>에서 카제는 독자들의 언론사 후원에 대한 세금 감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세제 혜택을 통해 독자조합 결성을 장려해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을 주장했다.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들이 모여 조합을 결성하고, 이 조합이 후원자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들에게 의결권과 정치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이 반영된 새로운 법이 등장했다. 소위 ‘블로쉬(Bloche)법‘이라 칭하는 언론의 자유, 독립과 다원주의 강화를 위해 2016년 11월 14일 마련된 법이 그것이다. 이 법에 의해 이제는 언론사뿐 아니라 ’언론사 후원자 모임’, ‘독자들의 모임’을 후원하는 경우에도 소득세 감면의 혜택이 주어진다. 또한 동법 23조에 따라 언론사가 순전히 소액주주들만으로 구성될 경우, 세금 감면의 혜택을 받으면서 자본금에 투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 역시 일반 언론사에 투자할 경우 30%, 연대적 언론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50%의 소득세 감면혜택이 주어진다.
‘블로쉬법’이 공표되자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들이 주주가 될 수 있도록 시도하는 매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레주르>(Les Jours)다. <리베라시옹> 출신의 저널리스트들 11명이 이슈를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옵세셔널 저널리즘’을 표방한 이 매체는 개인들의 투자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70만 유로의 창업기금을 마련했고, 2017년 5월에는 <레주르>의 후원자 모임을 통해 60만 유로를 마련할 목적으로 두 번째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시도했다. 연대적 언론기업에 해당하는 이 매체에 주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50%의 감세 혜택이 주어진다. 물론 이들은 소액주주로서 <레주르>의 독자조합을 구성하고 이 매체의 생존을 함께 책임지게 될 것이다.
물론 크라우드 펀딩이 신생매체를 창설하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언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충분한 자금을 모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에 나서지만 그런 매체나 개인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면서 소액의 자금을 모으는 데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캠페인 성공에 있어서 마케팅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거나, 편집권의 독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몇 비판에도 불구하고, 크라우드 펀딩은 언론사의 재정 확충과 신생매체의 창업을 돕는 대안적 모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더불어 광고가 아닌 독자의 후원에 의존하면서 독자와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언론 본연의 임무에 집중함으로써 독자에게 고품질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회를 언론사에게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와 우리는 미디어 환경이 다르고, 저널리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차이가 난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론사에 후원을 했다고 세금을 감면해 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목소리들이 많다. 더구나 크라우드 펀딩이 프랑스처럼 활성화되어 있지도 않고, 차별적인 고품질 콘텐츠로 승부를 건다거나 독자와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언론사도 거의 없다. 그러나 언론과 저널리즘이 끝없이 추락하는 상황을 이대로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뉴스의 권력을 독자에게 돌려주고, 독자에게 시민의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언론과 시민이 힘을 합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민정 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minjj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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