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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6 18:00 수정 : 2005.12.06 18:00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은 환경운동, 생명운동입니다"

여의도 MBC 본사 4층. 두 평 남짓 되는 편집실들이 칸칸이 나뉘어 있다. 40개가 넘는 편집실 사이사이로 있는 복도는 미로 같다. 이리저리 헤매다 찾은 34번 편집실. 최삼규 PD(50)는 작은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한창 편집 작업 중이었다. “어서 와요. 반갑네요.” 최삼규 PD가 안경을 벗으면서 인사를 건넨다. 선한 눈매, 아이 같은 미소. 13년 동안 ‘하늘을 지붕삼아, 땅을 이불삼아’ 살아온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 PD의 얼굴은 해맑다.

올해 촬영한 자연 다큐멘터리 <공생과 기생>을 편집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삼규 PD가 “한 번 볼래요?” 라고 말하며 테이프를 빨리 감기상태로 보여준다. 화면에 나비, 애벌레, 개미 같은 곤충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허허. 이렇게 보면 1분만에도 볼 수 있어요. 1년 동안 찍은 건데…….”

‘자연 다큐멘터리에 인생을 던진’, ‘정직과 뚝심의 자연 다큐멘터리스트’, ‘자신만의 색깔을 추구하는 작가주의적 PD’. 최삼규,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그가 연출했거나 기획한 다큐멘터리만도 30여 편. 자연 다큐멘터리는 방송사 내에서 선뜻 맡으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전체 제작기간은 대체로 1년, 땀과 인내가 요구되는 장르다. “미쳐서, 미쳐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안 미쳤으면 진작 포기했죠.” 최삼규 PD가 자연 다큐멘터리PD가 아닌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PD로 불리는 이유다.


처음부터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은 아니었다. 83년 MBC에 입사할 때 최삼규 PD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다는 일념에 가득 찬 사회학과 졸업생이었다. 90년이 돼서야 기회가 왔다. MBC의 첫 시사고발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 그는 환경문제를 주로 고발했다. 1년 반 동안 전국의 별 험악한 곳을 돌아다녔다. 오염물 처리시설, 개발 같은 이권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에게서 죽이겠다는 협박도 여러 번 받았다. 몸도 마음도 극도로 지쳤다. 무엇보다 사람이 싫었다. 부장에게 찾아가 만 아니라면 다른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하겠다고 했다. 부장은 책상 밑을 한참 뒤적이다 기획안 하나를 찾아내어 "이거 한번 만들어 봐." 하며 던져 주었다. 그 때 받은 기획안이 자연 다큐멘터리 <곤충의 사랑>. 그때까지 최삼규 PD가 알았던 곤충이라고는 노랑나비, 흰 나비, 매미 정도. 곤충도감을 찾아보며 이름부터 외워야 했다. 전문가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 자연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벌레 한 마리도 ‘생명체’로 다가왔다.

두 번째 자연 다큐멘터리 <어미 새의 사랑>도 고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한강물에 던진 돌멩이 찾듯이’ 무작정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뻐꾸기가 오목눈이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오목눈이의 알들을 필사적으로 둥지 밖으로 떨어뜨려 살아남는 새끼뻐꾸기의 모습. 자기 새끼들은 죽은 줄도 모르고 뻐꾸기 새끼에게 쉴 새 없이 먹이를 물어다주는 오목눈이.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뻐꾸기시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MBC 본사로 찾아와 항의했다. 뻐꾸기시계가 통 안 팔린다는 것이었다. 사장은 아이들이 뻐꾸기가 밉다고 집에 걸려있던 뻐꾸기시계를 버리는 일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 때 최삼규 PD는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순수한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그는 특히 아이들이 자연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딴 짓할 때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자연 다큐멘터리는 심야나 대낮에나 내보냅니다. 참 아쉬워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애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7년 동안 끈질기게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동물을 찍겠다는 기획안을 냈던 이유 중에는 어린이 교육차원의 문제도 있었다. 기획안을 낼 때마다 한 편에 1000달러만 주면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유명 다큐멘터리를 사서 방송할 수 있는데 그 백배가 넘는 돈을 들여 왜 똑같은 것을 찍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경제적인 논리로만 볼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문화적으로는 위험한 일이지요. 외국 자연 다큐멘터리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강조합니다. 냉정하지요. 자신들 특유의 시각이 녹아날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 정서에는 좀 안 맞아요. 그런데도 외국 다큐멘터리를 계속 방영하는 건 문화 제국주의에 빠지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결국 어렵게 제작기회를 얻었다. 2002년 여름, 한국에서 월드컵 대표팀이 기술적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90분 내내 뛰고 또 뛰었을 때 최삼규 PD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열악한 장비를 짊어지고 초원을 헤매면서 찍고 또 찍었다. 빠듯한 예산과 시간.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의 세렝게티 초원에 드문드문 숨어있는 동물들을 찾아내는 어려움. 섭씨 40도까지 오르내리는 더위. 말라리아모기와 벌보다 무서운 체체파리. 언제 육식동물이 습격할지 모르는 위험……. 예상은 했었지만 직접 겪어봐야 실감하는 어려움들이었다. 1차 촬영을 마치고 귀국할 때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2개월 동안 찍은 테이프 100여 개가 통째로 사라지기도 했다. 테이프들이 든 박스는 끝내 못 찾았다고. 그런데도 최삼규 PD는 아프리카에서 보낸 6개월 동안 행복했다고 한다. 태초의 땅 아프리카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충청도 말씨가 남아있는 여유롭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동물의 세계?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하는데 제 보기에는 조화와 공존의 세계입니다. 육식동물, 초식동물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며 사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 인간사회에 적자생존의 법칙이 더 가혹한 것 같아요. 남을 짓밟고, 평가니 경쟁이니. 이게 뭐냐고요. 이런 거 모르게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야생에서 암수가 만날 때 머리 굴려가면서 조건을 따지나요? 그냥 튼튼한 놈 찾는 거지. 인간들이 더 불쌍하다 이겁니다.”

그의 전작 다큐멘터리들과 마찬가지로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는 다큐드라마형식이었다. 외국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시각으로 동물의 가족애, 희로애락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30%도 안 되는 육식동물의 고단한 ‘삶’도 담아냈다. BBC,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도전하는 첫 자연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에 방송직전까지 불안함이 컸다. 생각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보통 지상파 자연다큐멘터리의 평균 시청률은 6.6% 정도. <야생의 초원, 세렝게티> 평균 시청률은 13.1%였다. 시청률 조사기관 TNS코리아가 꼽은 ‘2002년 시청률 5대 이슈’로 꼽힐 정도였다.

“그냥 찍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동물들한테 사랑스러운 눈빛 한 번 지어봐라, 좀 더 우렁차게 포효해봐라, 라고 시킬 수가 있나요. 그런 장면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되지요. 다큐드라마는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최삼규 PD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다큐드라마 형식을 추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자연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을 환경운동, 생명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 자연을 좋아하게 되고 또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시청자들이 즐겁게 보는 동안 자연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든다고 한다.

이런 최삼규 PD의 열정을 알아본 이들로 이뤄진 ‘최삼규 PD와 함께’라는 모임도 있다. 그의 인터넷 블로그에 모인 회원수는 160명 정도. 지리산에서 희귀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에서부터 주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최삼규 PD는 요즘 매일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내년 1월 비무장지대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버틸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이번에는 성우의 내레이션이 없는, 동˙식물의 극적인 생태를 잡아낸 화면과 소리로만 이루어진 다큐멘터리에 도전할 것이라고 한다.

천천히 길을 걷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여전히 아이 같은 미소를 간직한 최삼규 PD.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도전’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편집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옆에서 작업을 하던 조연출에게 최삼규PD에 대해 물어보았다. 최삼규 PD를 슬쩍 쳐다보는 조연출의 얼굴에 장난기가 어린다. “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시고, 여유 있으신 분이죠. 그런데 말해도 될라나? 은근히 고집 있으시고 완벽주의자세요. 한마디로 외유내강형?” 옆에서 듣고 있던 최삼규 PD가 허허 웃는다. 나무처럼 바위처럼 살고 싶다는 최삼규 PD. 나무와 바위는 말이 없는 것 같아도 말이 있고, 움직임이 없는 것 같아도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최삼규 PD의 다큐멘터리 역시 계속해서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서서히 스며들어 자연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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