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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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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김재영
“생각은 화살과 같다. 일단 활시위를 벗어나면 화살은 그대로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후대에 남긴 경구의 일부다. 황우석 논란을 거치면서 여론 전쟁터가 되어 버린 사이버공간을 지켜보며 이 말이 떠올랐다. 과연 줄기세포는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몇 개나 되는지, 논문조작의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그러나 뭇사람들의 가슴에 박힌 성난 의견들은 치유하기 힘든 상처만 남겼을 뿐이다. 인터넷 강국의 긍정적 위력은 이번에도 여실히 입증되었다.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은 모토로 삼은 ‘관점이 있는 뉴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인터넷 사이트 브릭은 ‘진실 찾기’에 나선 젊은 생명 과학자들의 소통체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일부 누리꾼들은 피디수첩에 사과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에 나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명암은 늘 공존한다. 사이버공간은 이참에 방종이 자유와 어떻게 다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온갖 욕설에 언어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하나의 견해만 통용되는 획일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오죽했으면 네티즌과 매카시즘을 합성한 ‘네카시즘’이란 신조어까지 나왔을까. 황우석 논란을 통해 사이버공간이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의 대명사로 부각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익명성 또는 가명성이 용인되는 인터넷의 고유한 특성이 이를 부채질한 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이버 여론이 공론 형성을 저해하는 주범이라는 등식은 온당한 평가가 아니다. 네카시즘은 불행하게도 이성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우리 사회의 언론과 이들이 조성한 여론풍토를 쏙 빼닮았다. 누가 뭐래도 한 과학자를 신의 반열에 오르도록 한 원죄는 기성 언론에 있다. 그것도 구시대의 유물이어야 할 맹목적 국가주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원해서 말이다. 피디수첩의 특종이 나왔다. 제대로 된 언론이 있는 한 어떠한 성역도 이 땅에 발붙일 수 없다는 희망을 힘겹게 전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성모독으로 비춰졌다. 진실을 입에 담을수록 사회에서 격리되는 그야말로 비이성적 집단 광기가 횡행했다. 피디수첩이 혼자 짊어진 원죄의 대가는 그렇게 혹독했다. 원죄의 대속자이어야 마땅할 보수언론의 행보는 으레 보아온 일이지만 가관이었다. 조그만 의혹이라도 품을라치면 친북좌파로 매도하는 색깔공세는 여전했다. 사안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물타기 전략도 녹슬지 않았다. 진실과 동떨어진 사실의 파편 하나를 갖고 호들갑 떠는 천박한 변죽 울리기도 예나 변함이 없다.욕설과 비방만 없었지 보수언론의 저널리즘은 사이버공간에서의 무책임하고 극단적인 의견표출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누리꾼들은 그간 우리 사회의 여론시장을 지배한 보수언론에게서 합리적 논쟁은 쓸모없다는 현실세계의 법칙을 체득하고 이를 가상공간에서 구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넷심’에 기대어 가벼운 군중심리에 영합하고 마녀사냥을 부추긴 보수언론이 황우석 신격화뿐 아니라 네카시즘의 뿌리인 것이다. 그래서 이어지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경구는 일부 누리꾼 못지않게 오늘도 반성할 줄 모르는 보수언론을 향한 메시지다. “화살을 잘 간수해라.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네가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있으므로.” 김재영/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재영 교수가 미디어전망대의 새 필자로 합류해 인터넷매체 부문의 비평을 맡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이주현 경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처장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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