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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1 11:05 수정 : 2006.02.02 09:14

지금은 ‘라디오 정치시대’ 손석희.

오전 6시15분엔 눈을 뜬다. 굳이 6시15분에 일어나는 이유 몇 가지가 있다. 이때쯤 일어나야 하루일을 시작하는데 지장이 없고, 흔히 정각이나 30분에 알람을 맞추는 고정관념도 싫고, 6·15는 남북정상회담의 평화통일의 열망이 담겨 있는 숫자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손석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국의 주식시장 현황을 알려주고 아랍어 멘트로 시작되는 국제정세를 들려주고, 현안과 관련 있는 인물과 인터뷰가 이어진다. 곡성교육청 장학사와 여당의 한 국회의원과의 인터뷰에선 상대가 질문의 핵심에서 벗어나, 답답함을 주자 정확한 답변을 유도하고, 정치적 홍보의 소지가 있는 대목에서는 명쾌하게 선을 긋는다. 그를 듣거나 보고 있노라면 답답증이 없다. 그래서 그는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는 즐거움을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그런 손석희가 문화방송을 떠난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문화방송을 떠나 대학 강단에서 후배 육성을 하고, 방송도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방송사 노조위원장은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손석희 스타일로 봐서 몸값 올리기를 위한 가벼운 처신은 아닐 것” 임을 말한다. 이번 결정이 쉽게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추정하게 한다.

문화방송만이 아니라 일반 청취자와 시청자들 또한 아쉬움이 크다. 손석희 만한 방송인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순발력과 논리정연함이 뛰어난 언론인으로 정평이 나있고, 영향력과 신뢰도에 있어서도 많은 언론인 중 정점에 있다. 이처럼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많은 언론인들을 뒤로 하는 이유는 단순히 순발력과 논리에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말은 형식과 내용이 일치한다. 방송인은 물론이고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 중에서 표현과 내용이 실제적으로 일치하는 경우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경쾌함과 상쾌함을 주고, 때로 통쾌함을 주기까지 한다. 바르도와의 개고기 논쟁이나 일본 시네마현 의원의 독도 논쟁에서 그가 보여준 냉철하고 예리한 모습은 막힌 속마저 뚫는 특급 소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손석희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그는 공정한 균형감을 강조한다. 그러나 듣고 있노라면 기계적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그가 진정 뛰어난 점이다. 인터뷰 상대가 충분히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발언의 허점이나 모순이 있을 때에는 엄정한 비판의식이 발동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문제와 관련이 있을 때, 그는 '공정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기계적 균형미나 공정함을 내세워 쟁점을 피하거나 변죽을 울리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이거 문제가 있는데 싶으면, 그는 여지 없이 그 문제를 파고든다. 높은 수준의 공정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니,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언론종사자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좀 얻었다 싶으면 가는 곳이 있다. 사람들은 이런 행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기 앵커나 기자들은, 대중의 사랑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의 발판으로 이용하기 일쑤였다. 지금도 여의도에는 전직 앵커나 기자 출신이 매우 많다. 현역 시절 내세웠던 공정성은 당파성으로 변질되고, 현역시절의 말과 글재주는 국민을 현혹시키는 데 동원되고 있으니, 인기와 명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기존 행태와 분명한 선을 긋는 손석희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손석희도 문제가 있다. 이는 그 자신의 문제라 할 수 없지만, 그를 통해서 드러난 문제들도 만만치 않다. 우선 손석희가 왜 자꾸 예외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손석희가 언론종사자의 기본이 되지 못하고, 예외적인 인물로 설정되어야 하는지가 문제다. 수많은 방송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송인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방송사에 입문하고 고도의 전문 영역에서 십수년간 활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석희 같은 인물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이가?

인기가 있다 싶으면 정치권에서 유혹하고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기다렸다는 듯, 여의도로 향하는 풍토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또 제2의 손석희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에 시청률 경쟁을 위해 젊은 방송인들을 스포츠나 연예오락프로그램의 가볍고 감각적인 진행자로 전락시키는 행태 역시 큰 걸림돌이다. 사회에 대한 정치한 분석을 통해 총체적인 이해의 시간이 주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경쟁의 전면에 젊은 방송인들을 내세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수준 높은 방송인 양성이 아닌, 방송인의 연예인화를 초래할 것이다.

어쨌든 손석희는 자신의 길을 위해, 또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방송사를 떠날 모양이다. 그간의 손석희를 생각하면 단순 해프닝이 될 것 같지 않다. 또 대학강의와 방송을 병행한다 하니, 6시15분의 상쾌한 기상에 지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그가 대학강단에서 언론인의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우리 언론 발전에 더 이로울 것으로도 보인다.

손석희, 떠나는 아쉬움은 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낙화'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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