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01 20:30
수정 : 2006.02.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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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한겨레> 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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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해마다 명절을 지내고 나면 ‘추석 민심’, ‘설 민심’이라는 말이 신문에 등장한다. 명절을 맞아 선거구에 내려갔거나 고향을 찾은 국회의원 몇 사람이 들었다는 그곳 주민들의 말을 정리해 놓은 기사이다. 국회의원들이 전하는 민심이라는 것이 실은 단편적이고, 자의적인 취사선택을 거친 내용이다.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올해도 많은 신문들이 1월31일치에 설 민심을 빠뜨리지 않고 보도했다. 중앙일간지 가운데 <조선> <중앙> <동아> <한국> <문화> 등 5개 신문에서 설 민심 기사가 눈에 띈다. 그리고 역시 그걸 읽어도 민심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얻을 수 없다. 정치 무관심과 살림살이에 대한 걱정은 대체로 공통적이지만,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게다가 민심을 전하는 의원들의 소속 정당에 따라, 이를 보도하는 신문에 따라 내용은 중구난방이었다. 경기회복이나 살림살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감은 의원의 소속 정당에 따라 정 반대로 나타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에 따르면 “못살겠다는 불만이 극에 달했다”, “경제가 좋아진다는 기대감이 크더라” 라고 여야 의원이 전하는 민심이 정반대였다.
영남지역민들의 한나라당에 대한 태도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가 달랐다. 조선일보는 “영남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피로감이 심한 상태이며, 당 간판만 있으면 당선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한나라당 의원의 말을 보도했다. 반면에 중앙일보는 강원 수도권 충청 등과 함께 영남에서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좋다”는 말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왜 신문들은 이런 설 민심기사를 해마다 보도하고 있는가? 나는 이것을 신문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들고 싶다. 우선, 정보 통신기술의 발달로 국회의원이 꼭 지방에 내려가야 민심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더욱이 인터넷으로 심층적인 민심에까지도 접속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 신문이 국회의원들의 단편적인 말을 들어 “민심은 이런 것이오”하고 제시한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설 민심을 보도하려고 할 때 신문이 지방 취재망을 가동시켰다면, 의원 몇 사람의 이야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층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편집국 취재망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총선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상시적으로 가능하도록 부서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출입처가 특정 부서의 배타적인 취재 영역으로 되어 있는 관행은 이제 던져버릴 때가 된 것이다. 이를테면 국회의원이 이야기하면, 무조건 정치부의 취재영역이고, 그것은 바로 정치기사가 된다는 식의 관행이 아직도 살아 있다. 거꾸로 말하면, 아무리 정치적인 발언이나 활동이라도 국회나 정당의 입을 통해 표출되지 않으면, 그것은 정치부의 소관이 아니며, 또한 정치가 아니라는 식의, 정치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고정관념이 문제가 된다.
다른 어느 매체와도 구별되는 신문의 강점은 전국을 장악하는 탄탄한 취재망이다. 신문이 정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부서간의 벽을 허물어 다루는 주제에 대해 취재역량을 총동원할 때, 다른 매체와는 차별되는 신문의 강점이 비로소 드러날 것이고, 신문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다.
성한표/<한겨레> 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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