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기세포 의혹을 다룬 지난해 12월15일 피디수첩 특집방송. 피디수첩을 통해 피디 저널리즘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황우석 논문조작 파헤친 ‘피디수첩’ 계기 이분법 해소 관심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사건 과정에서 <문화방송> ‘피디수첩’ 프로그램과 피디들만큼이나 극단적 부침을 겪은 것이 ‘피디(프로듀서) 저널리즘’이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피디수첩팀의 취재윤리 위반을 계기로 피디수첩으로 대표되는 ‘피디저널리즘’에 대해 ‘브레이크없는 피디저널리즘’ ‘흉기가 된 피디수첩’ ‘보통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는 등의 노골적 비난을 퍼부었고, 피디수첩과 함께 피디저널리즘도 구석에 몰렸다. 그러나 피디수첩의 취재 내용이 취재윤리 위반을 넘어 진실로 드러나면서 ‘피디 저널리즘’은 언론 보도의 한 정점을 보여준 탐사 저널리즘의 또다른 이름이 됐다. 기자 정보취재력·피디 심층구성력 각각 장점
상호 비판 앞서 협력으로 저널리즘 충실해야 과연 이번 피디수첩의 보도는 ‘피디 저널리즘’의 승리인가? 언론 전문가들은 피디수첩의 보도가 피디들의 제작 시스템에 힘입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시간을 가지고 심층성을 추구하는 피디들의 취재 관행이 없었더라면 이번 취재·보도는 한국 언론 현실에서 나오기 쉽지 않았다”며 “한국 언론사의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이도경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장(한국방송 피디)도 “취재에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진 않지만 매일 기사를 쏟아내야 하는 기자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매일 뉴스를 취재·보도하는 기자들과 달리 시사 프로그램 피디들은 보통 1~2달에 1편 정도를 만들며, 이번 ‘황우석 사건’처럼 비중있는 경우엔 열외로 해서 여러 달씩 공을 들이기도 한다. 평소 피디들의 약점으로 지적받는 안정적 출입처·취재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이번 보도에선 ‘자유로움’으로 작용했다. 즉, 출입처가 없기 때문에 취재원 눈치볼 것 없이 문제점을 파고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피디 저널리즘의 발생 배경이나 피디들의 성향도 이번 보도의 한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13일 ‘황우석 신드롬과 피디수첩’ 토론회에서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는 “1980년대 후반 사회 민주화에 따라 군사정권 시대에 (기자) 저널리즘의 부재로 생긴 미해결 사건들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요구에서 피디 저널리즘이 등장했다”며 “이런 배경은 피디들이 기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진취적 성향을 갖는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피디수첩의 보도는 ‘피디 저널리즘’보다는 ‘저널리즘’ 자체의 개가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지난 1월24일 ‘황우석 사태와 탐사 저널리즘을 바라보는 시각’ 토론회에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기자와 피디 저널리즘의 도식적 이분법은 이번 사건에서 잘못된 기자·피디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은폐하는 오류를 낳는다”며 “이분법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민주·지성·자율·용기·탐사·공공·자유 등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은 “중요한 사안에 긴 안목으로 파고드는 것은 기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며 “통신사는 속보를 버리기 어렵지만, 신문사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심층 보도로 돌아설 수 있다”며 기자쪽에서도 피디들의 취재·보도 시스템을 적극 도입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방송사의 경우 1990년대초 피디들이 만드는 ‘피디수첩’‘그것이 알고 싶다’ 등이 나온 뒤 ‘시사매거진 2580’ ‘취재파일 4321’ ‘뉴스추적’ 등 기자들의 심층 프로그램도 잇따라 등장했다. 1990년 이후 8년 가량 피디수첩에서 활동한 송일준 피디(문화방송 외주제작센터장)는 “피디들은 기자들과 달리 1차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해 소재가 한정되고 제보에 의존하게 된다”며 “프로그램 구성력을 가진 피디들이 기자들의 정보 수집 능력까지 갖춘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부터 <중앙일보> 탐사·기획팀에서 활동해온 이규연 에디터도 “과거엔 기자는 기록자, 피디는 연출자로 특성을 달리했는데, 앞으로의 저널리즘은 양자에게 모두를 요구한다”며 “탐사 저널리즘이 부족한 신문사들도 발굴·추적이나 기획에 전념할 수 있는 별도의 팀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