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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비전향장기수 리인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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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비전향장기수 리인모씨 별세
1993년 3월 판문점을 거쳐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 리인모(사진)씨가 16일 숨졌다. 89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내각은 17일 공동으로 “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이고 비전향장기수인 리인모 동지가 남조선의 감옥에서 당한 고문의 후과(후유증)로 16일 7시에 89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전했다. 북한은 리씨의 장례를 ‘인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위원장으로 고위 당·정 간부 57명이 참여하는 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 리씨의 시신은 인민문화궁전에 안치됐으며, 18일 오전 8시에 발인할 예정이다. 리씨는 다른 북송장기수와 마찬가지로, 국립묘지 격인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치된다. 리씨는 비전향 장기수만 보호하는 적십자종합병원 분병원에서 1년 가량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리씨의 생은 한민족이 간직한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17년 10월 함경남도 풍산군에서 화전민의 유복자로 태어난 리씨는 일본 동경공업고등학교에 다니다 중퇴한 인텔리였지만, 학업 중단 후에는 고향에서 공사장 인부로 일하면서 해방을 맞았고, 해방 후에는 노동당에 입당하면서 공산주의 활동에 나섰다. 종군기자로 6·25 참전…34년 동안 복역민족비극 산증인…93년 YS정부때 송환 이후 북한군 문화부 소속 종군기자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빨치산 및 지하당 활동혐의 등으로 34년간 복역한 뒤 1988년 출소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관계를 염두에 둔 ‘인도적 차원’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장기방북’ 형식으로 북한으로 송환됐다. 리씨는 북송된 뒤 ‘의지와 신념의 화신’, ‘통일의 영웅’ 등으로 찬양되면서 대대적인 환영과 함께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다. 고 김일성 주석은 직접 리씨를 병문안하고 노동당 당원증을 수여했다. 그를 소재로 한 우편엽서와 우표가 발행됐고, ‘김일성 훈장’, ‘영웅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받기도 했다. 리씨의 가족으로는 부인 김순임씨와 외동딸 리현옥씨 부부, 외손자와 손녀가 각각 1명씩인 것으로 알려졌다. 딸 리현옥씨는 평양의 한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2004년 인천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발표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6·15공동선언 7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백낙청 상임대표는 평양 순안공항 출발성명에서 “오늘 우리는 통일을 염원하던 이인모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깊은 슬픔을 금할 수 없으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연합뉴스 nomad@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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