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우경식(63) 요셉의원장. 사진 요셉의원 제공
|
선우경식 요셉의원장 투병 끝 타계…노숙인 등 지원 20년
그의 병원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영등포 슈바이처’라고 했다. 20여년간 도시 빈민, 노숙인, 외국인 노동자 등 43만명을 무료로 치료해 온 선우경식(63·사진) 요셉의원 원장이 18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2005년부터 위암에 시달려 온 선우 원장은 지난 15일 병세가 악화돼 뇌사 상태에 빠졌고 이날 새벽 숨을 거뒀다. 의료 복지의 사각에 놓인 사람을 위해 온몸을 바쳤지만, 정작 자기 몸 속의 한줌 암 세포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선우 원장은 1969년 가톨릭 의대를 졸업하고, 73년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귀국 뒤 한림대 병원에서 근무했던 그는 83년부터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관악구 신림동에서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환자를 업고 다니며 봉사를 펼치던 그는 “계속 남아 진료해 달라”는 봉사단 대표 신부의 부탁에 대학을 나온 뒤 요셉의원을 열었다. 87년 8월 요셉의원은 서울 관악구 신림1동에 무료자선병원으로 세워졌다.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던 도시 빈민들에게 그의 병원은 생명줄이었다. 운영 자금이 턱없이 모자랐지만 자원봉사자와 후원자의 도움으로 버텼다. 도시 개발로 달동네가 사라지던 97년 5월, 선우 원장은 요셉의원을 서울 영등포 역사 뒤편의 쪽방촌으로 옮겼다. 노숙인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몸을 더 낮춘 것이다. 80여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그를 도왔고, 2100여명의 후원자들이 뒤를 받쳤다. 2003년엔 ‘요셉의원을 돕는 잡지’인 <착한 이웃>이 창간돼 4년 동안 1억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선우 원장은 이 잡지의 창간호에 “돌이켜보면 이 환자들은 내게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 아닌가”라고 썼다. 그는 병상에 있으면서 “나눔과 사랑으로 병원을 계속 이어가 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고 황동 요셉의원 사무장은 전했다. 선우 원장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홀어머니를 모시고 40여년 전 선친이 지은 작은 집에서 살아왔다. 가톨릭대상(사랑부문), 제1회 한미 참의료인상, 호암상 사회봉사상, 대한결핵협회 복십자대상(봉사부문) 등을 받았다. 장례는 21일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경기도 양주 천주교 길음동 성당 내 묘원이다. 연락처는 (02)590-2352.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사진 요셉의원 제공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