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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사진)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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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동아일보 탄압 비판
80년 광주진압땐 성명 발표
정권의 신문·방송 통제 연구
언론개혁 ‘학계 구심점’ 역할
‘한국 비판언론학의 선구자’ 이상희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 비판언론학의 선구자인 이상희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가 9일 새벽 4시50분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1.
1929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58년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65년 일본 도쿄대 대학원(사회과학연구과)을 수료했다. 1967년부터 94년까지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옛 방송위원회 위원장(2006년)도 역임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한겨레신문사 자문위원 및 경영자 추천위원(1994~1998)을 지내기도 했다.
1967년 서울대 신문대학원의 첫 교수진으로 강단에 선 그는 ‘강의실 안의 박제된 언론학’을 밖으로 끌어냈다. 1970년대 유신정권의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 때는 학계의 침묵을 깨고 정부 비판 목소리를 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는 기자들을 지지하는 지면광고를 몇몇 동료 교수들과 함께 내기도 했다. 1980년 신군부 계엄령 아래서는 군부의 무자비한 광주 진압을 비판하는 ‘117인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중앙정보부에 붙들려 가기도 했다.
그는 당시 주류 언론학이던 미국식 실증주의 이론으로는 전두환 정권의 엄혹한 언론통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1980년 서울대 신문학과와 대학원에 사회제도로서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커뮤니케이션론’ 강좌를 처음 도입했다. 당시 통계방법적인 규범적 틀에 갇혀 있던 소장파 학자들은 열광했다. 그가 도입한 비판언론 연구는 현재 300여명의 후학들로 가지를 뻗었다.
고인의 제자인 주동황 광운대 교수는 “제자들한테 한없이 자상하고 울타리가 되어주신 분”이라며 “절제된 행동과 정의에 대한 실천으로 사표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비판이론 연구는 역동적인 현실 참여로 이어졌다. 언론개혁의 선두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1985년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전신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을 이끌었다. 1989년 한겨레신문 편집국이 방북 취재 계획으로 압수수색 당하고, 리영희 논설고문이 구속됐을 때도 언론학 교수들의 ‘언론 탄압 중지 촉구 성명’ 발표를 이끌었다. 1990년대 말 언론운동진영을 하나로 묶어낸 연대기구인 언론개혁시민연대 출범 때도 학계의 구심점이 됐다.
대표 저서로는 체제옹호적이며 반민중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메커니즘을 파헤친 <커뮤니케이션과 이데올로기>(1983)와 5공 시절로 돌아간 언론자유의 현실을 돌아보는 <다시 언론 자유를 생각한다>(2010)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경자(75)씨와 슬하에 이지원(한림대 교수), 지현(메트라이프 부지점장), 지사(주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 특실이며, 발인은 12일 새벽 4시다. (02)2072-2091. 글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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