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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14 18:31 수정 : 2010.07.14 22:00

박진목 선생

한국전쟁때 남북 오가며 ‘종전 설득’ 고초

독립운동가이자 평화통일운동가였던 동주 박진목(사진) 선생이 13일 저녁 7시30분 경기도 하남시의 한 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2.

1918년 8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말기 맏형 시목이 국내외 무장 독립운동단체를 하나로 묶으려는 활동에 관여했다가 44년 5월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대구에서 체포돼 1년2개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해방을 맞았다. 형 시목과 그의 아들은 베이징에서 붙잡혀 옥중에서 숨져 보기 드문 부자 순국을 했고, 다른 형제와 조카들도 한국전쟁 때 실종되는 수난을 겪었다.

고인은 해방 뒤 건국준비위원회 남로당 등에서 활동을 하다가 박헌영의 폭력투쟁 노선에 반발해 활동을 접었고, 한국전쟁 때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하루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며 종전운동을 벌였다. 그는 51년 7월 미군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아 평양을 방문해 이승엽 등을 만나 종전을 촉구했다. 40일 만에 남쪽으로 돌아와 미군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났으나 다시 특무대에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이후 진보당 사건, 5·16 쿠데타에 따른 혁신계 탄압 때도 조사를 받거나 도피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70년대에는 우사 김규식의 비서를 한 송남헌 등과 함께 민족정기회를 만들어 친일잔재 청산과 평화통일 운동을 벌였다.

유족으로는 희진·희선·희창 등 세 아들이 있다. 빈소는 하남시 마루공원이고 발인은 16일 오전 8시 치러진다. 유골은 고인이 생전 남한산성 부근 자신의 농장 터를 기부해 세운 민족정기탑에 안치된다. (031)795-2222.

김효순 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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