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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20 22:01 수정 : 2010.08.20 22:01

박재일 한살림 명예회장

박재일 한살림 명예회장
학생운동·농업운동가로…늘 말보다 몸이 앞섰지요

가신 이를 기리는 상투어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는 훌륭한 인물 박재일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살만큼 산 사람들이 숱하게 많은 판에 박재일이 먼저 간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프다.

박재일의 학생운동가 면모, 그리고 그가 이루어낸 협동조합 ‘한살림’의 성공담과는 별개로 숨막히는 군사정권 시절 그가 보여준 성실함과 신뢰감이 나에게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톨릭 농민회의 활동가로서 고 지학순 주교·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원주권’을 서울의 재야 세력과 연결하는 고리의 하나가 박재일이였는데 이 일에는 김정남과 정성헌을 빼놓을 수 없다. 박재일을 처음 만났을 때 당당한 체구와 과묵함이 매우 잘 어울린다고 느꼈으나 말 숱이 적을 뿐 그는 의견전달자(communicator)로서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1980년대 초에 있었던 이른바 ‘오원춘 사건’ 당시 그가 안동에서 열린 집회에서 가톨릭 농민회 회원들을 앞에 놓고 행한 열변을 나는 현장에서 들었다. “형제 여러분”이라는 그의 말문은 신앙 공동체에서 흔히 쓰는 것이지만 그때 거기서는 가식과 위선의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농협 민주화’, ‘우리 밀 살리기’,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 등 여러 분야에서 농업운동가로서 실천해온 그의 삶 자체가 담보된 표현이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과묵함의 또 다른 일면이겠으나 경북고-서울대 출신인 박재일은 학력을 자랑하는 패들이 흔히 즐긴 이데올로기 담론에서 거리를 둔 사람이다. 도산 안창호가 말한 ‘무실역행’이 어떤 것을 상상했던 지는 찍어낼 수 없지만 농민운동가와 협동조합 조직 및 관리자로서 묵묵히 일하여 구체적 성과를 올린 박재일은 우리 시대의 그 살아 있는 본보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젊은 세대는 무실역행이란 표현이 고리타분하다며 그 실체에 의문을 던질 것이다. 번드르르한 변설보다 실천을 중요시하며 그 일에 자신이 앞장서는 자세가 박재일이 보여준 것이라고 답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박재일은 이를테면 분단 시절 서독의 사민당 수상 헬무트 슈미트 같은 사람이다. 그는 화려한 수사의 사민당 이론가가 아니었고 현장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독일말로 마허(Macher·실행자·실행지도자)가 슈미트였다. 10여 년 전 독일인 변호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그의 아버지는 사회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실천가 슈미트가 좋아서 사민당에 표를 던진다는 거였다.

가신 임, 박재일의 뜻을 잇는 길은 더 많은 박재일이 젊은 세대에서 나오는 것이다. 임재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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