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16 18:46
수정 : 2010.09.1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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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벨 볼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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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의 어머니’ 베르벨 볼라이
먼 독일 땅에서 날아든, 당신의 떠남을 알리는 지인의 글을 받았습니다. 지난 7월 당신을 만났을 때, 건강이 허락하면 가을에 한국에서 열리는 여성평화회의에 기꺼이 참석하겠다고 하시더니, 이리도 황망히 가실 줄 몰랐습니다.
2차대전 직후 독일에서 태어난 당신은 재능 있는 화가였습니다. 국가가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주문하고 생활을 보장해주던 동독에서 당신은 안락한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전시기 핵군비경쟁이 점입가경 꼴이 되면서 이에 대한 반대투쟁이 치열해지던 80년대 초, 당신은 화실의 문을 열고 나와 평화운동에 몸을 던졌지요. 그때부터 투옥과 석방, 추방의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서방으로 추방당했다가 기어이 동베를린으로 돌아와 싸우기를 택했던 당신은 동독 시민운동의 상징이 되었지요. 89년 9월 당신의 주도로 창립된 ‘노이에스 포룸’은 ‘때가 무르익었다’는 제목 아래 체제의 민주화, 시민-정부간 대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이것은 ‘어둠 속에 울려 퍼진 신호탄’이었습니다. 동독 시민들은 노이에스 포룸에 가입하기 위해 한밤중에도 당신의 집으로 달려와 서명을 받아갔습니다. 당신은 “사람은 배우는 능력이 있다. 사회는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켰습니다. 당신이 속했던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이 당신을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평화, 참여와 소통을 바랐다고 강조했지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당신은 노이에스 포룸 대표로 원탁토론을 주도하며 동독 체제 전환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동유럽의 반체제 인사들 가운데 레흐 바웬사는 폴란드 대통령이 되었고, 바츨라프 하벨은 체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만, 당신은 독일 통일 뒤 현실정치를 떠나, 또다시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 당시 가장 불행한 분쟁의 현장이던 보스니아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몇년 동안 현지 주민들과 생활하면서 앙상한 땅 위에 평화를 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의 고생 때문인가요. 당신은 위중한 병을 얻었고, ‘시민적 용기란 어떤 것인가’를 세상에 보여주고서 2010년 9월11일, 65살의 나이로 홀연히 떠나갔습니다.
사슴의 눈매에 독수리 용기를 갖추었던 당신. 당신 떠난 하늘 위에 하얀 학 한 마리가 고요히 큰 날갯짓을 하며 맴을 도는 것 같네요.
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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