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속의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생전 그리도 좋아한 야구 모자와 점퍼를 걸친 모습으로. 조문객으로서, 그 사진을 보며 함께 웃을 수 없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했다. 꽤 오랫동안 빈소를 지키고 있던 록 밴드 허클베리핀의 이소영, 그의 눈은 내내 부어 있었다. 가라앉을 틈도 없이 수시로 눈시울을 훔쳤다. 그는 홍대 앞에서 ‘샤인’이라는 바를 운영한다. 물었다. “오늘 가게 안 열어?” 답했다. “손님들에게 ‘어서 오세요’ 할 자신이 없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은 그렇게 동료 음악인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떠났다. 지난 1일 자취방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지 닷새 만인 6일 오전 8시10분에. 서른일곱의 나이로.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의 30시간을 홀로 방치되어 있었다. 불행이었다.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충분히 생을 지속할 수 있었을 텐데.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그날 녹음 스케줄이라도 있었기에, 그나마 지인들이 집으로 찾아가서 쓰러진 그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아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인공호흡기를 끼고 심전도 측정기를 붙인 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본 게. 그 모습을 본 동료 음악인들은 함께 담배 연기를 뿜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의 다음 앨범 매니지먼트를 맡기로 했던 타카피의 김재국은 말했다. “이제 밝은 음악 좀 해서 돈 좀 벌어보자고 했는데….”
2008년, 장기하가 ‘싸구려 커피’로 떴다. ‘루저’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거라고들 했다. 그때 어떤 이들은 말했다. 왜 진작부터 진짜 루저들의 노래를 해온 달빛요정은 아무도 관심을 안 갖느냐고. 이진원은 웃었다. 장기하 덕분에 자기도 거론되어 좋다고. 잠시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던 루저들의 이야기, 하지만 이진원은 그 스포트라이트에서도 주변에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싸구려 커피를 마실 여유도 없는, 진정 처절하고 각박한 삶을 노래했기 때문이었다고. 비참한 현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음악으로 새삼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어쩌다 술자리를 함께 하면, 그는 늘 나를 타박했다. 왜 자기 앨범 리뷰를 안 써주냐고. 그는 나의 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말없이 넘어가다 결국 말했다. “형, 형 노래는 뭐라 말할 게 없어. 그냥 그 자체로 완결편이야. 설명이 필요없어요. 내가 뭐라고 하겠어, 거기에다. 내가 형 노래 처음 들었을 때 내 비루했던 상황이 뻔히 기억나는데. 그래도 나중에 할 말 있으면 꼭 리뷰 쓸게요.” 하지만 약속을 지킬 기회를, 그는 주지 않았다.
진원이 형, 생전 써주지 못한 앨범 리뷰 대신 이렇게 추모의 글 올립니다. 형이 그렇게 서고 싶어했던 여름 록 페스티벌 무대에 국화꽃 한 송이 올려놓을게요. 몰래 봐주세요. 그리고 웃어주세요. 영정 속 그 모습처럼.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착한콘서트 두드림에 출연했던 달빛요정 이진원씨의 인터뷰입니다.(2009년11월30일)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