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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18 18:59 수정 : 2010.12.19 21:45

 

 80년대 연세대 운동권 학생들의 사랑방이었던 술집 ‘훼드라’를 운영하던 조현숙씨(73)가 17일 숨졌다. ‘훼드라’는 서슬이 시퍼렀던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시위와 농성, 연행과 투옥으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학생들이 피곤한 몸을 추스렸던 쉼터였다.

 훼드라는 1969년부터 신촌 현대백화점 옆 골목에 있었는데, 연대생들은 훼드라를 30년 넘게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조현숙씨가 1973년 인수할때는 카페였다. 하지만 연세대생들의 등쌀에 못이겨 소주팔고 막걸리 파는 학사주점으로 바꾸었다. 훼드라는 아직도 계란말이, 김치찌개, 두부, 두루치기, 고춧가루를 시뻘겋게 푼 콩나물 해장라면과 시금털털한 막걸리, 소주를 팔고있다. 훼드라가 ‘운동권 술집’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70년대 말부터였다. 연세대 동아리 인간문제연구회 회원들이 몰려오면서 다른 동아리들도 떼지어 왔다. 매일 저녁 떠들고 노래 부르니 일반 손님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 손님은 아예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없이 연세대 ‘운동권 전용 술집’이 됐다.

 조현숙씨는 학생들이 감옥에 가면 만사 제쳐두고 방청하러 다녔다. 죄수복에 수갑을 찬 학생들의 모습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 당시 수배자가 많았는데, 술집을 닫을때면 항상 문을 잠그지 않았다. 학생들이 밤에 몰래 들어와 밥먹고 잠자고 가라는 배려였다. 87년 6월항쟁때는 본부로도 쓰였다. 조현숙씨는 한때 고초도 겪었다. 83년쯤 치안본부에 강제 연행되기도 했고, 집 전화가 도청 당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연 구멍가게 술집 아줌마는 이렇게 스스로도 ‘운동권’이 되었다. 학생들이 데모를 하면 막걸리 잔에 막걸리를 부어 죽 늘어놓고 두부를 접시에 담아 놓아 목마른 학생들이 마시게 한 적도 있었다.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 송영길 인천시장, 이광재 강원도지사,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 등 이곳을 찾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외에도 김영춘, 이인영, 임종석 전 의원, 강금실 전 법무장관도 다녀갔다.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은 “감옥가면 주인 아주머니가 영치금도 넣어주고, 출소하면 두부부터 먹여줬다”면서 “몇십년간 지켜오면서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는데…”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또 “살아 있는 역사였는데, 한시대가 갔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워했다. 한민호(연세대 경영 79)씨는 “훼드라는 연세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신촌 인근에 있는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등 70년대부터 90년대 학번들이 살다시피한 집”이라고 말했다. 김학민씨는 “80년대 연대 운동권 학생들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운동권 학생들이 훼드라에 모였다”면서 “아주머니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자 민주화 투쟁의 든든한 후원자”였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승현(연세대 정외과 83)씨도 “수배 당했을 때 용돈과 도피처도 많이 제공했는데 돌아가셔서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서울대앞 ‘녹두’, 고려대앞 ‘이모집’, 이화여대앞 ‘목마름’도 시대의 변화에 못이겨 꽤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다. 훼드라는 지금껏 유일하게 대학가에 남아 있던 학생운동권 술집이고, 조현숙씨는 운동권들의 ‘엄마’였다. 학창시절 이곳을 즐겨찾던 연세대 졸업생들은 아주머니의 죽음과 함께 훼드라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충신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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