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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훈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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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훈 집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0년대 초반 전남 해남의 교회였습니다. 정 집사님은 고장난 마이크나 오르간을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손에 드라이버와 니퍼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였습니다. 돈을 벌려면 가마니로 쓸어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돈에는 관심이 없어 늘 적자였지요.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정 집사님을 찾았습니다. 그 무렵 해남에 머물던 소설가 황석영님은 ‘제3세계 집사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요.
연장 가방을 메고 해남 천지를 주유하시던 정 집사님의 눈에 점차 ‘고장난 교회’ ‘고장난 농촌’ ‘고장난 정치’ ‘고장난 세상’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스럽고 어려운 삶을 고쳐주지 않으면 농민들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셨습니다.
70년대 중반부터 농민운동이라는 가방을 메고 ‘아스팔트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습니다. ‘고장난 세상’을 고치시는 데도 만능 수리공이셨습니다. 해남지역 교회의 변화를 이끌고 해남YMCA가 농민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개혁하셨습니다. 기독교농민회 전국 교육부장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민중교육 만화를 만드셨습니다. 농민 단일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 출범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보운동의 연대운동 활성화에 힘을 쏟으셨습니다. 민중운동 진영이 여러 이론과 의견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면 간단명료하게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간단한 것이여. 전자제품은 전기가 ‘뿌라스’에서 ‘마이나스’로 흘러야 하는디 이 흐름에 ‘트라불’이 일어나면 고장이 나는 것이여. 사람 사는 세상도 권력이 농민이나 노동자 같은 민중에서 흘러나와서 정치나 법원이나 교육 같은 쪽으로 흘러가야 하는디, 여기 ‘트라불’이 일어난께 문제가 생긴 것이여. 고것만 찾아 고처불면 된당께.”
그런데 이렇게 훌쩍 가시니 황망할 뿐입니다. 정치의 독재화, 비정규직의 양산과 고착화, 빈부격차의 심화 등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는데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한없이 맑고 일관된 생, 고장난 것들을 수리하는 어려움을 낙으로 삼으신 삶은 우리의 지표가 될 것입니다. 한생 원없이 사신 만능수리공, 제3세계 정광훈 집사님! 영면하십시오. 윤기현/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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