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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8 19:44 수정 : 2011.06.08 19:44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영원한 광복군’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지난 두 주일 사이에 용태가 의외로 위중해짐에 예상은 했지만, 선생이 이렇게 급서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후학의 한 사람으로 선생을 접한 반세기 남짓 세월만큼이나 허망한 느낌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벅찹니다.

한 교정에서, 한 인문학의 범주 안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두고 지켜본 선생은 타인을 감동시키는 매력을 상당히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 매력은 인간들의 비정상적 행태가 의외로 많은 현실의 암울함도 얼마큼 작용했다고 여겨집니다. 올곧은 선비의 흉내라도 내는 정상적인 지성인을 찾아보기 힘든 오늘의 풍토에서, 선생은 남달리 돋보이는 분이었습니다.

선생의 투철한 신념과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발군의 행동력은 일찍이 학병의 대열에서 탈출해 ‘독립군’으로 입대하던 장정의 신화를 낳았습니다. 애국 애족으로 드러나는 민족주의는 선생의 이념이자 신앙이었습니다.

학자로서 선생은 ‘중국근대사’를 더듬고, ‘한국공산주의사’를 훑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면서 역사를 이루는 정신인 그 철학을 선생은 바르게 체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바로 선생이 스스로 토로한 “역사의 신을 믿는다”는 언명이었습니다.

역사의 신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인간들이 과거로부터 미래로 끊임없이 이어가야 할 ‘보편적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인류의 보편적 이상을 절대적 신처럼 여기는 신념 속에서, 사학자는 누구보다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며, 그것을 저해하는 세태에 크게 저항하게 마련입니다. 선생은 이런 모습의 일단을 절대권위시대에 고려대 총장직을 맡았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선생은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입니다.

노년에 들어 선생은 국무총리라는 관직의 제청을 받자 가볍게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선생은 관존민비 의식의 타파라고 밝히셨습니다만, 어디 그뿐이었겠습니까? 현대의 코스모폴리탄인 선생이 전근대 의식을 불식시키려 함은 당연하지만, 인류 문화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 양성이 곧 시대를 선도하는 작업이라는 교육의 가치에 대한 숙지 또한 작용하였다고 저는 추측합니다. 교직에 회의를 품는 교육자가 날로 늘어가는 오늘날, 교육의 가치를 고취하는 데 선생의 기여는 적지 않았습니다. 교육자의 외길을 지킨 지조로 해서 선생의 일생은 더욱 빛납니다.

중국에 산재한 임시정부의 유적과 애국 투사들의 족적을 광복군 출신인 선생이 서거한 뒤에는 누가 그리 알뜰하게 보살필지 걱정입니다. 중국의 수많은 대학에 건립한 ‘한국학연구소’에서는 오늘도 선생의 도움을 기리면서, 한국의 모든 측면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한국학 연구 인력이 날로 급증함을 보면서, 저희는 이제 기뻐만 할 수 없는 착잡함에 빠지는 처지입니다.

굵직한 검은 테 안경 너머로, 줄담배를 피우시면서, 구순 넘어서도 반드시 반주를 곁들이던 선생의 풍치가 새삼 그립습니다. 항상 감추기만 하던 선생의 고뇌의 끈을 이제 저세상에서는 다 풀어 버리길 바랍니다. 편히 잠드소서.


윤사순/고려대 명예교수·한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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