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12 19:36
수정 : 2011.08.1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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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순보 전 전교조 부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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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박순보 전 전교조 부산지부장
순보 형님, 순보 선생님.
결국 이렇게 가시고 마는군요. 예순여덟 성상 만년청년으로 살아온 당신이 저 피안으로 가시고 만 오늘 아침 창밖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가슴을 때립니다. 아픕니다. 슬픕니다. 눈물이 솟아오릅니다.
지난 6월 담도암으로 넉 달, 아니 두 달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우리는 믿지 않았습니다. 자연요법을 위해 경주 산내로 들어가시기 전날만 해도 서른명 넘게 손두부집에 모인 동지들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더랬습니다. “병마와 싸워 이겨 다시 돌아오겠소!”
그리고 우리의 강권에 못 이겨 노래도 한 곡조 뽑았더랬지요.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전교조라 부르리~~.” 당신의 ‘18번’이었습니다. 다들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전교조 연정’이 저토록 뜨겁게 살아 있는데…, 머잖아 건강 되찾아 우리 곁으로 돌아오리라고. 아, 우리들의 든든하고 인정스러운 형님이자 오빠이자 동지이자 벗이며 기댈 언덕이었던 당신은 그리 쉽게 가시면 안 된다고.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민주화 대항쟁의 해인 1987년 가을 어느 날로 기억합니다. 부산교사협의회 지하 사무실로 마흔다섯살의 당신은 문득 나타났습니다. 침묵과 굴종의 오랜 세월, 서면중 과학교사 박순보는 반드시 터져 나올 교사·교육운동의 때를 기다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날로부터 당신에게는 오직 한길만이 펼쳐졌습니다. 참교육, 민족민주, 노동, 사람사는세상 운동의 그 길은 가시밭길, 때론 천길 낭떠러지 길이었지만 당신이 언젠가 한 말처럼 그것은 ‘갈수록 맛깔 나는 길’이요, ‘가슴 벅차게 행복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녕 당신은 가신 것입니까? 이 캄캄한 야만의 시대, 노동 형제들의 피눈물 마를 날이 없고, 비인간적인 학습노동과 경쟁에 내몰린 어린 학생들의 신음소리 더 높아만 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 함께 가야 할 길 멀기만 한데 ‘민주 도깨비’, ‘부산 갈매기’ 박순보, 우리 시대 참스승 당신은 이렇게 가신단 말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마음을 압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이렇게 듣습니다.
“나를 참교육운동, 민주민족운동, 민중운동의 도구로 써주시어 고맙소. 행여라도 이 박순보에게 남은 것은 가난과 병마와 쓸쓸함밖에 없다고 말하지 말아주오. 자식들에게 못다 한 사랑이 가슴에 걸리지만 동지들이, 벗들이 있어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꿀 수 있었고, 그 꿈을 위해 분투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행복했소. 그대들을 사랑하오.”
그렇습니다. 순보 형님, 순보 선생님, 우리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윤지형/부산 내성고 교사·전교조
부산지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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