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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한국 시베리아 삭풍회’ 회장(사진 맨 왼쪽)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 유가족 단체 대표자들이 지난 2009년 10월 서울 김포공항에서 일본 고등법원에서 열리는 ‘재한 군인·군속 재판’ 항소심에 참석하기 위해 항공기에 오르고 있다. 재한 군인·군속 재판은 2001년 6월 일제 강점기 군인·군속 출신의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피해 보상, 야스쿠니 합사 철회를 요구하며 낸 집단소송이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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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징병뒤 소련 억류’ 이병주 삭풍회 전 회장 별세
피해자 모임 만들어 보상 요구일 정부 외면…법원도 소송 기각 일제 식민지시대 말기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전후 소련에 억류됐던 피해자들의 모임인 ‘시베리아 삭풍회’를 이끌었던 이병주 전 회장이 13일 오전 5시20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 1925년 평양에서 태어나 숭인상업학교를 나온 고인은 1945년 8월 초 관동군에 입대했다가 전후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등지에서 강제 노역에 종사했다. 소련 수용소 당국에 일본인이 아닌데도 억류되고 있는 부당성을 지적하며 귀국을 호소했던 그는 1948년 12월 수천명의 다른 한국인 억류자들과 함께 흥남으로 돌아왔다. 이후 남한으로 넘어온 억류자들은 소련에서 왔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았고 풀려난 뒤에도 분단체제에서 요시찰 대상자로 감시를 당했다. 시베리아 억류자들은 1990년 6월 한국과 소련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자 삭풍회 모임을 결성하고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고인은 특히 삭풍회의 5대 회장을 맡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주도했으며, 일본과 러시아의 관련 국제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억류자들의 기구했던 운명을 호소했다. 그래서 일본 정계와 법조계에 지인들이 많다. 이재섭 삭풍회 현 회장은 “고인이 거의 20여년간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며 삭풍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왔다”고 회고하며, 이제 희생자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운동의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삭풍회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보상 요구 소송이 다 기각됐기 때문에 “고인이 세상을 하직하면서도 눈을 감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2010년 6월 전후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특별급부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보상을 해주는 법안을 마련해 통과시켰지만, 한국인과 대만인 등 외국인 피해자는 막판에 제외시켰다. 한국인 억류자들은 2009년 8월 자민당 정권이 붕괴하고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자 마침내 보상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이병주 전 회장의 빈소는 서울 강동구 둔촌동 보훈병원 5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5일 오전 6시30분이다. (02)483-3320.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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