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12 19:54
수정 : 2012.02.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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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한국녹색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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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섬 산호초 촬영중 실족
‘천혜의 섬’ 굴업도 보존열성
외교학도로 환경운동 이끌어
가신이의 발자취
“굴업도에 무덤을 쓰더라도 굴업도를 지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한국녹색회 이승기(52·사진) 정책실장이 굴업도에서 실족사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승기 실장은 11일 오후 1시께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에 딸린 섬인 토끼섬에서 산호초를 촬영하던 중 바닷물에 빠져 사망했다. 이날 오후 12시 반쯤 굴업도에 들어온 그는 썰물 때에만 드러나는 산호를 촬영하기 위해 점심을 거른 채 사진작가, 화가 등 일행과 함께 토끼섬으로 갔다. 한해 몇 번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산호초의 존재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진에 담기 위해서였다. 이 실장을 동행했던 굴업도 주민 서인수씨는 “산호초가 있는 현장을 안내한 뒤 15m쯤 떨어져있다가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가보니 썰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씨는 당시 망원렌즈로 산호를 촬영하기 위해 뒷걸음치다가 실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신은 섬에서 3㎞ 떨어진 해상에서 발견돼 해경에 의해 인양됐다.
굴업도는 8천만~9천만년 전 화산 폭발로 빚어진 섬으로 동쪽은 회랑처럼, 서쪽은 절벽처럼 침식된 독특한 해안지형을 갖고 있으며, 곳곳에 살아 움직이는 사구습지가 형성되는 등 지질학적으로 희귀한 섬이다. 또한 이팝나무 군락, 왕은점표범나비, 먹구렁이 등 멸종위기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굴업도는 1994년 핵폐기장 후보지로 선정돼 홍역을 치렀으며 씨제이가 통째로 사들인 뒤 2006년부터 골프장과 관광레저단지 개발사업을 추진해왔다. 이 실장이 사망한 토끼섬은 아름다운 해식지형이 그대로 보전돼 있으며 산호초가 서식하고 있어 문화재청으로부터 천연기념물 지정예고를 받은 바 있다.
이승기 실장은 녹색회가 창립되던 해인 1981년부터 대학생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1997년부터 정책실장으로서 녹색회를 사실상 이끌어왔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경북대 생물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환경운동가로서 전문지식을 쌓았다. 그는 동강댐 지키기 운동, DMZ세계생태공원 지정운동, 밤섬환경 정화운동 등을 펼쳐왔다. 최근에는 굴업도를지키는시민단체연석회의, 굴업도를사랑하는문화예술인모임 등과 연대해 ‘천혜의 섬’ 굴업도를 지키자는 운동을 펼쳐왔다.
빈소는 인하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장례식은 14일 오전 9시 굴업도를 사랑하는 시민단체연석회의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채귀순(51)와 큰딸 모영(27·회사원), 아들 건하(21), 주하(15)씨가 있다. (032)890-3192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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