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멱정 여익구
|
[가신이의 발자취] 멱정 여익구 형을 보내며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려, 멱정(사진)형. 썩은 무 베듯 단박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동강내고 사라지는 경우가 있구려. 금강경에 이르길, 이승이란 게 그저 ‘꿈결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 하지만 이처럼 순식간에 떠나는 경우가 있구려. 대체 뭐가 그리 바빠 뭐라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훌쩍 가버리는 거요. 갑자기 이승의 사람들이 싫어졌소? 그럼 그렇게 환한 얼굴로 사람을 대하던 그 멱정의 본디 모습은 뭐였소? 형의 얼굴빛이 너무 고와 사람들은 이리 얘기 했잖소. ‘세속에 있어도 늘 수행자처럼 사는 이’가 형이라고. 형이야말로 승속을 어우르며 사는 이라고. 그런 이들에게 사무치는 그리움만 남기고 느닷없이 가버리니 이건 또 무슨 도리요? 돌이켜보니 한 서른 해 가까운 시간입니다. 전두환이 패악을 부리던 1984년 여름에 형을 만나 몇 마디 주고받은 뒤로 이내 서로 이끌렸지요. 자석의 다른 극이 서로 자력을 행사하듯 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전생의 인연이 있긴 있나 봅니다. 그 잠깐의 만남이 운명처럼 서로에게 작용하였으니 말이요. 우스개처럼 나는 형 때문에 전과가 더 붙었다고 하면 형은 사래를 치면서 나 때문에 삶이 팍팍하다고 하였지요. 아무려나 살을 에는 겨울이나 다름없던 전두환정권에 맞서 민중불교운동연합이라는 조직을 꾸려내고 ‘투쟁’으로 이 사바세계를 극락정토로 만들자고 대들었으니 순전히 형의 ‘깡다구’에 내가 말려들은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시인 주용일은 그의 시 ‘얼음 대적광적’에서 ‘물속에 살기 위해선 얼음이 되는 것 두려워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죠. 가난하고 착한 사람의 피눈물로 범벅이 된 독점자본의 국가권력에 맞서 ‘해방과 통일의 세상’을 이루려면 감옥쯤이야 국립선방으로 받아들여야 했지요. 사실 말이 쉽지 그 ‘유배’를 감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형은 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그 험난한 유배를 겪고 나서는 외려 더 얼음보다 단단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유신정권에서 ‘불교의 민중화’인 민중불교를 주창하여 더 많은 이들이 얼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였으니, 그때부터 유마거사에 빗대지기도 했지요.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고 한 유마거사 말입니다. 좀 안다고 하는 이들이 민중불교는 사람들 사이를 ‘계급’으로 구분하여 분쟁을 일으킨다고 꼬집습니다. 계급을 말하면 뭔가 불순한 세력으로 싸잡으려는 속내가 보이는 수작이지요. 어떤 이는 더러 계급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하지만 형은 ‘그렇다. 민중불교는 계급운동이기도 하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자본의 수탈과 억압에 맞서 피지배계급인 민중이 생산의 주체이자 권력의 주인이라고 규정하였죠. 나아가 미국의 침략에 소신공양으로 맞선 베트남의 스님들처럼 민중불교운동은 반외세 민족자주화의 운동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
서동석/민중불교운동연합 3기 의장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