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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16 19:29 수정 : 2012.12.17 13:54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 의장

가신이의 발자취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 의장

진보운동의 빛나던 별이 또 하나 떨어졌다. 지난 12일 밤 이재영(사진) 전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1년 넘게 대장암에 맞서 꿋꿋이 싸워왔건만 병마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흔 다섯. 작별을 고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다.

하지만 그 길지 않은 생에 그는 너무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남기고 갔다. 지하정당이었던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부터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의 노선을 논하고 정책을 생산하는 자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지금은 새누리당조차 입에 올리는 ‘부유세’를 처음 민주노동당 핵심 공약으로 밀고 나간 것도 그였고, 이제는 민주통합당까지 그 실현을 공약하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정책 의제로 선보인 것도 그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정책 전문가만은 아니었다. 항상 사회변혁의 큰줄기를 응시하며 진보정치를 설계하던 기획자였고, 그 기획을 힘있게 밀고 나가던 노련한 실천가였다. 지도자연 하던 인물들이 한 번의 선거 결과에 낙담해 국민승리21을 떠날 때, 그래서 이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질 물줄기가 끊길 위험에 놓였을 때,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진보정치의 불씨를 이어간 사람이 바로 이재영이었다. 늘 특유의 낙관주의와 뚝심으로 동지들에게 새 출발을 재촉하던 이가 바로 그였다.

그런 그였기에 진보운동이 엇나가고 뒷걸음질 칠 때면 쓴 소리를 아끼지 않기도 했다. 항상 누구보다 먼저였고, 누구보다도 날카로웠다. 정규직 이기주의로 퇴행해가는 노동조합운동을 비판했고, 서민의 살림살이보다는 ‘반미’나 ‘통일’에만 집착하는 진보정당 내 흐름에 각성을 요구했다. 병상에서도 그는 낡은 세대의 과오와 훼절을 딛고 일어설 새롭고 젊은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놓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충실히 따를 때 진보정당운동은 전진했고, 그의 경고와 비판에 귀를 막을 때는 위기와 혼란이 뒤따랐다. 다름 아닌 지금 우리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래서다. 추도문에 늘 따라붙는 그 “잘 가라”는 말은 못하겠다. 그의 넋은 육신을 벗었지만, 우리는 그의 넋을 보낼 수 없다. 아니, 우리가 그 넋이 되어야겠다. 그와 함께 쓰러지고 그와 함께 부활해야겠다. 우리는 이재영을, 그리고 그가 육화했던 진보정당운동을 정말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장석준/진보신당 정책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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