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13 19:34
수정 : 2013.03.1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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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국웅(73) 광주기독교청년회(YMCA) 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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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김국웅 광주YMCA 재단 이사장
지난 11일 갑자기 세상을 떠난 고인의 빈소엔 기업인들뿐 아니라 시민·사회계 인사들이 많이 찾았다. 고 김국웅(73·사진) 광주와이엠시에이(YMCA) 재단 이사장은 1980년대부터 소설가 송기숙 전 전남대 교수, 고 명노근 전남대 교수 등 해직교수들과 가까웠다. 고인과 친구였던 김동원 전 전남대 교수는 “칠순 넘어 처음으로 울었어요. 정의로운 분이지요. 그런데 아깝게 가셨네요”라고 말했다. 고인은 해직 시절 그에게 ‘다달이 생활비를 몰래 건네준 은인’이었다.
고인은 일제 시대 지역 명문이었던 광주서중을 나왔으나 이례적으로 광주공고에 진학했다. 가난한 형편 때문이었다. 전남대 법대를 졸업하고도 화장품 등 장사를 했던 그는 ㈜무등에 입사한 뒤 84년 대표이사에 취임해 세계 최고의 열수축성 튜브를 생산하는 업체로 키웠다. 광주 광산업 1호 기업인 우리로광통신도 지난해 11월 코스닥에 상장될 정도로 기반을 갖췄다.
두 중소기업의 회장으로서 그는 2년마다 전 직원을 국외여행을 보냈고, 비정규직 직원을 단 한명도 두지 않았으며, 파격적인 출산 장려 제도를 도입했다. 2층짜리 사옥에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은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였다. 3년 전부터는 사내에 인문학 강좌를 개설해 직원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고인을 ‘원칙을 세우고 간절하게 실천했던 분’으로 기억했다. 고인은 95년 광주와이엠시에이 이사장을 맡은 뒤 회계사 한명을 고용해 6개월 동안 회계·재정 체제를 짜도록 했다. ‘5천원·1만원씩 회비를 내는 시민들에게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당시 광주와이엠시에이 수석 간사로 일했던 정 전 수석은 이후 고인을 ‘선생님’으로 모셨고, 해마다 5월 스승의 날이면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의자에 앉을 때도, 옷을 걸 때도 반듯이 했던’ 고인은 주변에 온정을 잃지 않았다. 회식 때 술 한잔이라도 함께 마신 직원들에게는 대리운전비를 손에 쥐여주는 회장님이었다.
최협 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은 “뒤에서 드러나지 않게 주변의 여러분들을 도와주셨다. 모범적으로 사신 분이다. 그런 따뜻한 리더십이 지역에서 필요할 때인데 아쉽다”고 추모했다. 고인의 장례식은 14일 오전 8시 광주광역시 동구 조선대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무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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