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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16 19:56 수정 : 2013.06.16 19:56

가신이의 발자취
군산 ‘한길문고’ 이민우 대표를 보내며

민우 형.

아직은 상복이 헐겁게 느껴지는 조카(1남2녀)들이 문상객을 맞이하는 빈소. 영정 속의 형은 여전히 생전의 그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군요. 당신은 최근까지 ‘군산 시민의 힘’ 공동대표를 맡을 정도로 그늘이 넓은 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단지 한두 단어로 정리하긴 쉽지 않지만, 저는 민우 형을 서점인으로 기억합니다.

전북대 총학생회 시절, 5·18 광주와 전두환 독재의 실상을 알리던 형은 구속, 수감됩니다. 옥고를 치른 뒤 당시 창간된 <한겨레> 군산지국의 일을 돕다가, 선배가 운영하던 녹두서점을 이어받아 한길문고를 열고 군산지역에 양서를 공급하는 일을 시작했지요. 신간을 일일이 읽고, 필요한 독자들에게 권유하셨지요. 매출 하락에 대한 방편으로 참고서를 팔게 됐을 때 당신은 슬퍼했습니다. 그때 이미 당신은 단지 상품을 팔고 사는 상인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일꾼이셨지요.

그렇게 애쓰시던 2012년 8월 어느 날, 450㎜의 집중폭우로 나운동의 한길문고는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1만톤의 물을 뽑아낸 자리에는 7만5천권 ‘책의 주검’이 남아 있었습니다. 형의 모든 것이 잠겨버렸기 때문에, 당시 군산에서는 형의 자살설이 나돌기도 했지요. 7억원 상당의 도서는 전부 폐기되었습니다.

당시 형이 남긴 기록을 되짚어봅니다. ‘어제 통장에 몇천몇백만원이 입금되었다. ‘수해를 입은 한길문고를 응원하는 모임’에서 보내주셨다. 한길문고가 재오픈하면 도서로 교환해가는 형태와, 후원금 또는 빌려주고 몇 개월 뒤에 상환받는 방법 등이란다.’ 그때 형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저는 같은 서점인으로서 참 부러웠습니다. 군산 시민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일하는 지역에서 형과 같은 관심과 성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서점인으로서 노력했는지도 돌아보았습니다.

최근 할인경쟁과 반값도서 등 가벼운 상술이 횡행하고, 자칫 함량 미달일 수도 있는 책들을 광고료 받고 홍보해주는 온라인서점의 행태 등 출판 생태계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도서정가제를 지키며, 지역 서점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속속 진행되는데, 대한민국은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은 말씀하셨지요. ‘서점은 책을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책을 만나러 오는 곳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데, 단순 정보만으로 책을 선택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양서를 골라 시민들에게 권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그 말씀을 새겨봅니다.

형수님(문지영)으로부터 형이 남긴 말씀을 들었습니다. 흐린 의식을 가누며, ‘한 달에 한 번씩 작가들을 초청하여 시민과 소통하는 일을 계속해달라’는 말씀이었지요. 쉰두살 짧은 생을 마치고 먼 길 가는 순간에도 형은 서점인이었습니다. 형은 평생 서점인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상훈/부천 경인문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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