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민주화운동 헌신한 이문영 박사 영전에
이문영 박사님,
구정에는 꼭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려고 했는데 이렇듯 홀연히 돌아가 버리시니 황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난해 7월 3일, 무려 36년 만에 무죄가 된 1976년에 있었던 이른바 ‘3.1민주구국선언사건’ 재심 공판정에서 이 박사님을 뵌 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 박사님을 뵙고 매우 놀랐었고 기뻤습니다. 이 박사님이 공판정에 나오실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 여 동안 댁에서나 혹은 병원에서 뵐 때마다 스스로 거동하실 수 없는 이 박사님의 모습이 몹시도 안타까웠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정장을 하시고 뚜벅뚜벅 걸어 법정에 들어오시는 모습을 뵙고 얼마나 놀랍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가버리시니 살아계실 적에 자주 가뵙지 못한 죄스러움과 허물 씻을 길이 없습니다.
제가 이 박사님을 가까이서 스승처럼 혹은 형님처럼 여기며 살아온 세월이 무려 40여년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제 삶의 절반은 이 박사님과 가정적으로 피붙이나 진배없이 지낸 세월입니다. 지근거리에서 이 박사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동지적 삶을 살 수 있었음은 내게 있어서는 참으로 큰 축복이요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박사님과 제가 만나게 된 것은 민주회복과 인권회복운동의 삶의 현장에서였습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만남은 이해관계로 얽혀있습니다. 이해가 어긋나면 그런 관계는 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박사님과 저와의 만남은 이해관계가 아닌 뜻으로의 만남이었습니다. 민주회복과 인권회복을 위한 투쟁선상에서 저는 이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값진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이 박사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옳고 바른 것에 대한 끈질김과 용기는 아무나 흉내 내기 어려운 경지셨습니다. 학문을 하는 내용이나 자세도 그러하였고, 불의한 독재 권력과의 투쟁에 있어서도 그러하였고, 가정을 비롯한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아무튼 이 박사님의 생활 전반에서 저는 단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박사님은 고려대학교 출신으로써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고, 고려대학교 교수로 평생을 봉직하시다 정년퇴임을 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세 번 해직당하셨고, 세 번 복직되는 진기록을 남기셨습니다. 같은 대학에서 세 번씩이나 해직과 복직을 반복하셨다는 것은 그 집요함과 끈질김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하겠습니다.
이 박사님의 학문하는 자세에서도 남다른 집요함과 끈질김을 보여 주셨습니다. 거의 많은 분들이 현역으로 있을 때에는 왕성하게 학문 활동을 하지만 정년 후에는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 박사님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정년퇴임하신 후 <논어맹자와 행정학>, <인간 종교 국가> 등 대작들을 연이어 출간하셨습니다. 행정학 연구에 위대한 업적을 정년퇴임 후까지도 쉼 없이 일구어 내셨습니다.
이 박사님께서는 자신의 자서전 제목을 ‘겁 많은 자의 용기’라 이름 했는데, 저는 이 박사님이 얼마나 용기 있는 분이신가를 직접 목격했었습니다. 1980년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군사법정의 1심 재판 최후진술 때의 일입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사형이 구형되어있는 가운데 최후진술들을 하게 되었는데, 피고들 가운데는 자기는 김대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노라고 에둘러 변명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 이문영 박사의 최후진술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첫째, 김대중 씨가 지금 무고하게 박해를 받고 있는데 이런 불의하고 부당한 일이 계속되는 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김대중 씨를 위해서 지금과 똑같은 일을 할 것이다.
둘째, 나는 원래 서울 본토박이이나 내가 나가면 나의 본적을 전라남도 광주로 옮기겠다.
셋째, 나의 신앙은 모태신앙이고 내가 장로로 섬기고 있는 성결교 서울 중앙교회는 내 아버님을 이어 대대로 섬기고 있는 교회이나 내가 나가면 내 교적을 지금 많은 핍박을 받고 있는 이해동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한빛교회로 옮기겠다.
지금 듣기에는 별것 아니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그 엄혹하고 살벌한 상황에서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잘라 말할 용기를 지닌 분은 이 박사님 말고는 없으리라고 저는 확언합니다. 호들갑을 떨거나 고함치는 일 없이 약간은 어둔 한 듯 하면서도 조근 조근 핵심을 찌르는 용기, 이것이 이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겁 많은 자의 용기’ 즉, 진짜 용기라 여겨집니다.
이 박사님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 역사에 참된 지사형의 투사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그 올곧은 삶을 이어 살아야 할 표상이십니다.
이문영 박사님,
정녕 돌아가셨습니까? 변함없이 평생 동안 믿으셨던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까? 사도 요한은 노년에 반모섬에서 이런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고 성서 요한계시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주안에서 죽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옳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의 뒤를 따르게 때문이다.”(요한계시록 14장 13절, 발췌)
맞는 말씀입니다. 이 박사님이야말로 하느님의 영원에 잇대어 편히 쉬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그러니 그리워하셨던 사랑하는 김석중 사모님 만나 그동안의 회포도 푸십시오. 또 먼저가신 동지들도 기쁘게 만나 즐기십시오. 혹시 거기서도 이 지상의 악한 무리들을 몰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들랑 동지들과 협력하여 거사해 주십시오, 이 박사님, 농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현실이 하도 숨막히는 형국이어서 해본 푸념이었습니다. 이젠 모든 걱정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저는 좀 외로울 것 같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두 번을 다 함께 감옥살이를 한 사람이 모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고 달랑 저 혼자만 남았습니다. 저도 돌아갈 날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그 날에 만나 뵐께요.
이해동/원로목사·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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