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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8 19:17 수정 : 2014.12.09 16:06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안식년중 간암 판정 2달만에 운명
재벌·북한문제 등에 폭넓은 관심
도그마 배제하고 대안 제시 힘써

진보학계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가 지난 7일 오후 10시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1.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이후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안식 연수를 하던 중 지난10월 현지에서 간암 판정을 받고 귀국한 뒤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8·15 해방 직후 한국의 경제상황을 주제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경제학)를 땄다. 이후 한국경제의 핵심이슈인 재벌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하며 “재벌개혁만의 재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해왔고, 최근에는 북한사회 문제로 관심의 영역을 확대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등을 통해 현실에 적극 참여하고, 안식년 중에도 개인 블로그에 ‘베를린통신’ 문패로 41차례나 글을 올리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을 보여줬다. <한겨레>의 칼럼 필진으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고인은 자신의 블로그 이름을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라고 지을 정도로 진보성향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진보진영이 흔히 비판받는 ‘경직성’과 ‘도그마’를 경계했다. 고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문제를 다룰 때 근본 원칙부터 재점검했다. 1980년대 한국자본주의와 한국국가의 근본 성격과 실천전략을 둘러싸고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에 참여해, 일부 학자들이 소련의 경제학 교과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한국경제에 꿰맞추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인이 당시 논쟁의 이론적 출발인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이해 차원을 넘어, 서양학문의 원류인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공부부터 다시 시작한 일화는 후학들에게 큰 가르침이 됐다.

고인은 모든 경제현안을 다룰 때 ‘한국현실에 입각한 진단과 대안 제시’를 원칙으로 삼았고, 이 과정에서 진보진영과의 논쟁도 마다하지 않는 치열함을 보여줬다. 2011년 ‘창비 주간논평’에 기고한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이라는 글을 통해 회사의 정리해고 결정에 항의해 200일 넘게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씨에게 공감을 보이면서도, “목표가 실현 가능해야 (노동)운동도 지속가능하다”며 합리적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1999년 대우 해체와 함께 대우자동차 매각이 추진되면서 일부에서 외국자본 인수 반대와 국유화론이 제기될 때도 비판론을 제기했다.

고인이 2012년에 펴낸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는 이런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다. 고인은 “일부 진보파처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그저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실천 가능한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제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앞으로 진보, 개혁, 평화세력이 집권했을 때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고인은 최근 북한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개인비용을 들어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안식연수를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한 것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대학 후배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북한문제를 김 교수님 만큼 천착한 경제학자가 드물다. 북한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대안제시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교수님을 잃은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큰 손실이다”고 애도했다.

고인이 학문을 하며 보여준 엄격함은 개인 생활이나 지인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인은 독일로 떠나기 직전 스스로 ‘좋아하는 선배’라고 부르는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을 만나 경기도지사 출마를 강력 만류했다. 김 교육감이 결국 출마를 강행했다가 예선에서 패하자, 고인은 지난 5월 자신의 블로그에 ‘김상곤을 안타까워하며-도지사 출마는 옳은 길이 아니었다’는 글에서 “한국의 장래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길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고인은 평생 재물이나 권력과는 거리를 둔 생을 살았다. 소탈하고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품답게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불리는 휴대폰, 신용카드, 승용차가 없이 생활했다. 한 지인은 “고인은 공사에 구분을 엄격히 하면서도 항상 자신을 낮추고, 뜻이 맞는 지인과의 술자리에서는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가까운 후배는 따뜻하게 품어주는 인간적 면도 있었다. 이 시대의 선비같은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수희(전 이화여대 연구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10일 오전 9시30분이다. (02)2258-5940.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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