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4.23 19:27 수정 : 2017.04.23 20:30

고 손준현 ‘한겨레’ 기자가 신문사 편집국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 모습.

[가신이의 발자취] 고 손준현 ‘한겨레’ 기자를 보내며

고 손준현 ‘한겨레’ 기자가 신문사 편집국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 모습.

준현이 형이 갑자기 떠났다. 떠났다는 형의 소식은 너무 뜬금이 없어서 오히려 실감이 안 난다.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아직 상복조차 입지 못한 채 조문객을 맞는 어린 아들들을 보니 현실감이 없다. 떠난 사람은 항상 그립다고 하지만 그립기는커녕 옆에서 갑자기 나타날 것 같으니 나는 아직 형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기자로서의 손준현은 매서웠다.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던 형이었다. 항상 어려운 쪽의 모습을 더 드러내려고 노력했고 비정상적인 권력에 대해서 각을 세웠다.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형은 싸움을 싫어했고 사람들에게 상처 입힐 것을 걱정했다. 기자 손준현과 내가 아는 형 손준현은 항상 그 갈림길에 서 있었고 그럴 때마다 아파했고 선택해야 했다. 얼마 전 외국 지휘자에 대한 사태도 굳이 형이 앞장서서 돌을 맞을 필요가 없었다. 굳이 잘 알고 친한 사람들과 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등을 돌릴 수 있었지만 형은 기자로서의 사명을 항상 중요하게 여겼고 기자로서 할 일을 했다. 기자 손준현은 그래서 소중하고 독보적인 존재였다. 해야 할 일을 자기 자리에서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우리 모두가 근래에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기자 손준현의 눈은 매서웠지만 형은 항상 그 잣대를 모든 예술가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았다. 예술가의 힘든 일상을 잘 헤아리고 있었고 이해하고 있었다. 형이 남긴 기사와 에스엔에스(SNS)의 글들을 보면 얼마나 소외된 예술가에게 관심이 많았는지 잘 알 수 있다. 종종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발품 팔아서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리를 찾기 위해서야.” 힘든 예술가에게 형은 따뜻한 메세나였다. 잘한 공연에 대해서는 칭찬해주고 같이 기뻐해주었다. 형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준에 들지 않은 공연에 대해서는 같이 슬퍼해주고 공감해 주었다. 적어도 형은 예술가의 슬픔을 아프게 지적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형은 기사를 쓰기 위해 항상 주변에 귀찮을 정도로 물어봤다. 형이 가진 확실한 정보와 잣대가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확인했다.

형과의 대화는 사람냄새가 짙었다. 말을 꺼내게 하는 것이 기자들의 제일 큰 덕목이라고 하지만 형과의 대화는 정말로 속에 있는 깊은 것까지 다 꺼내놓게 한다. 항상 형과 인터뷰를 하고 나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며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손준현이라는 기자의 기술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만나보니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형의 매력 때문이었다. 어렵고 힘든 일을 같이 고민해주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친구이자 선배였다. 형과 만나는 날엔 다른 약속을 아예 잡지 않았다. 대화는 항상 즐겁고 뜨거웠고 신선했다. 가끔씩 형은 기자보다는 예술가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할 만큼 아름다웠고 감성적이었다. 형은 작은 것을 크게 볼 줄 알았고 그것을 품위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근래의 어려운 시절을 지나며 모두의 마음속에 울분 가득할 때, 형이 운길산 역 앞에서 길섶의 작은 들꽃을 보며 소소히 에스엔에스에 사진과 함께 올려놓은 글 하나가 어떤 예술보다 더 위안이 됐다.

‘그냥 서 있을 땐 봄이 보이지 않는다. 몸을 숙여 엎드리면 보인다. 새끼손톱보다 작고 푸른 개불알꽃, 눈곱만한 수많은 얼굴의 꽃다지. 함께 겨울공화국의 언 땅을 파헤쳤다. 마침내 봄이 왔다. 그러나, 이제 서로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을 낮춰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봄과 마주하게 된다.’

글을 쓰다 보니 형이 그립기 시작한다. 보고 싶은 이는 옆에 없고 우리는 그가 없는 일상을 외롭고 쓸쓸하게 견뎌야 한다. 좋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이렇게 안타깝고 힘든 거구나.

형. 부디 안식을 취하길 바래요. 형과 같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어요.

류재준/작곡가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