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3 20:25
수정 : 2017.07.1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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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발표한 2003년 때의 고 박상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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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작가 박상륭 별세
지난 1일 이민간 캐나다서 장례식
‘박상륭표 문체’ 열광적 지지층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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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발표한 2003년 때의 고 박상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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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의 소설가 박상륭(사진)이 캐나다에서 지난 1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
1969년 간호사였던 부인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간 그의 부음은 열흘이 훌쩍 지나서야 태평양을 건너왔다.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친 부인이 뒤늦게 국내 지인에게 알려왔다. 그의 동료 및 후배 문인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고인은 종교 등을 소재로 삼아 형이상학적·신화적 세계를 천착한 독보적인 작가였다.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와 <칠조어론> 등에서 그는 인도 설화와 불교, 기독교 등을 오가는 호방한 상상력으로 한국 소설에 드문 관념의 세계를 축조했다. 박상륭 소설의 주제와 뗄 수 없게 맞물린 것이 범접하기 쉽지 않은 그의 문체였다. 남도 판소리 사설처럼 늘어지면서도 기묘하게 논리적이며, 토속어 및 한자어와 특유의 조어(造語)가 어우러진 ‘박상륭표 문체’는 문단 안팎에서 적지만 열광적인 지지자를 낳았다.
가령 작고한 김현이 감탄한 <죽음의 한 연구>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공문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 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은 없는데다, 우기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
194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거쳐 경희대 정외과를 중퇴했다. 63년 성서 속 인물 유다를 주인공 삼은 단편 ‘아겔다마’가 <사상계> 신인상에 입선해 등단했으나, 6년 뒤 이민을 떠났고, 75년 <죽음의 한 연구>를 출간하며 문단에 복귀했다. 그 뒤 중단편집 <열명길>과,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 격인 <칠조어론>(전4권) 등을 내며 한국 문학사에 자신의 개성을 뚜렷이 새겼다. 98년 귀국해서는 소설집 <평심>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 <소설법>, 장편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잡설품> 등을 냈다. 그가 국내에 머물던 99년 4월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심포지엄과 공연이 어우러진 ‘박상륭 문학제’가 열리기도 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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