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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01 21:59 수정 : 2006.10.01 21:59

‘마음의 벽’ 허물고 7년째 난치병 환자돕기 먹거리장터
내부 반발 다독여 ‘화해 실천’…주민 “보람” 한목소리

[이사람] 연합바자회 펼치는 박승화 목사·수경 스님·강문석 신부

30일 낮 12시 서울 강북구 삼각산 아래 한신대 신학대학원 운동장. 명절을 앞둔 시골 5일장처럼 붐비면서도 흥겨움과 정겨움이 감도는 바자회장에서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막 삶아온 국수를 양념에 버무리기 시작한다. 스님이 직접 만든 비빔국수를 먹으려는 손님들로 화계사 먹거리 장터 앞이 순식간에 장사진을 이룬다.

화계사 장터와 마주한 곳은 송암교회 먹거리 장터. 점심때가 되자 교회 장터에서 단연 인기는 설렁탕국. 엄청난 양의 국물을 끓이는 며칠 동안 담임 박승화 목사는 밤 11시면 불을 줄이고, 새벽 4시면 불을 끄곤 했다. 박 목사는 수경 스님을 손짓해 불러 차 한잔을 권한다. 이내 둘은 그 자리에서 종이컵 든 손을 교차해 마시는 ‘러브 샷’으로 각별한 사이를 과시한다.

성당에서 함께 온 자원봉사자 100여명을 격려하던 강문석 신부도 고개를 돌려 미소를 보낸다. 하루가 멀다하고 종교 갈등으로 인한 다툼과 테러 소식을 전하는 일부 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바자회는 이 일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송암교회와 수유1동성당, 화계사 등 세 종교가 함께 난치병 환자를 돕기 위해 여는 나눔의 잔치. 7년째 맞은 바자회는 이제 강북구를 대표하는 축제가 돼 온종일 인파로 넘쳐났다.

마을의 ‘이웃종교 어울림’은 송암교회와 수유1동성당 사이 교류로 시작됐다. 91년 부임한 박 목사는 성당과 화해를 실천했던 기원형 목사 뜻을 이어 정덕필 주임신부와 강단 교류를 시작했다. 신부가 개신교회에서, 목사가 성당에서 설교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구의 화해를 실천하는 첫걸음을 뗐다.

이어 화계사 주지 성광 스님과 같은 군종 출신이던 이종남 신부가 성당 주임으로 오면서 세 종교간 연합바자회가 시작됐다. 화해의 지평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불교까지 넓어진 것이다.

화계사는 1996년 개신교인 소행으로 추정되는 방화사건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화계사에서 참선하던 외국인 스님들이 “이웃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예절조차 없는 나라 아니냐”며 짐 챙겨 떠나려던 마을에서 오히려 세계를 놀라게 한 종교 화해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송암교회 안에선 ‘불교와 함께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장로와 권사 가족을 비롯한 다섯 가족이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바자회를 통해 이들 교회와 성당 그리고 사찰이 지난해까지 모은 돈은 2억9천여만원. 이는 고스란히 난치병 환자 99명 수술비와 치료비에 지원되고 이들 교회 등에는 감동과 보람을 안겨주었다.

바자회에서 옷가지를 사고 막걸리를 마시던 수유동 주민 이성구(48)씨는 “물건 사면서 남까지 도울 수 있으니, 이렇게 신날 수 없다”며 “더구나 한동네에 살면서도 개 닭보듯 하던 다른 종교인들끼리 함께 어울려 웃고 떠드는 걸 보니 10년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고 했다.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는 산천초목만큼 ‘다름이 더욱 아름다운’ 가을 잔치였다.

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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