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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3조 승찬대사가 머물다 열반한 삼조사 입구에서 방장 관롱 스님(가운데)을 비롯한 환영객이 한국의 순례객을 마중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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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찰 관광지화 불상·예식 화려해져
본질 흐리는 허례허식 용납 않는 것이 ‘선’
중국 사찰 순례 / 선의 원류를 찾아서…2. 우상과 독선의 안경을 벗어라
이레 동안 북쪽에서 최남단까지 중국을 관통하며 주요 선종 사찰을 훑는 대장정에 나선 순례단은 방문 사찰의 ‘환영’을 피했다. ‘의전’에 허비할 시간이 없기도 하려니와 문화혁명 이후 선불교 전통이 끊기다시피 한 중국 스님과 마주앉아도 선사들의 안목까지 엿보기가 어렵다고 본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7일 순례단이 우한 삼조사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삼조사의 거대한 일주문 앞에 방장 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이 가사 장삼까지 갖춰 입고, 악대까지 늘어세운 채 순례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조계종의 ‘큰스님’이 참선 불자들을 대거 이끌고 온다는 소문을 듣고 대환영에 나선 것이다.
순례단의 좌장 격인 고우 스님은 ‘권위’와 ‘허례허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대표적인 선승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선승들의 모임인 선원수좌회 대표를 지냈으나 조실 자리를 마다하고 경북 봉화 각화사 서암에서 오래 홀로 살았고, 지금도 봉화 금봉암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다. 고우 스님은 “나는 ‘큰스님’이 아니다”라며 가사를 벗고 대중 속에 숨어버렸다. 대신 고우 스님의 도반인 상현 스님(경남 양산 천성산 조계암 한주)과 고우 스님을 모시고 각화사 선원장을 지냈던 철산 스님(경북 문경 대승사 선원장)이 총대를 멨다.
문화혁명으로 파괴됐던 중국의 절들은 정부 당국의 불교 진흥책과 관광 정책으로 단시일 안에 복원돼 관광지화해 인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불상과 예식은 더욱 더 화려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형상 이전의 본래면목(본성품)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순례단이 절 곳곳을 돌아보고 나자, 삼조사 방장(한국에선 주지) 관롱 스님이 다실에서 다과를 베풀었다. 그러자 대승사에서 매년 21일 동안 한잠도 자지 않고 참선하는 용맹정진을 이끌 만큼 결기가 있는 철산 스님이 물었다.
“달마와 승찬 선사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가?”
이에 방장은 “여기에 계시기도 하고, 한국에 계시기도 하고, 극락세계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철산 스님이 다시 윽박질렀다.
“그것 말고!” 주워들은 말이나 생각으로 꾸며낸 말이 아니라 ‘언어 이전의 소식’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수박 맛을 보여주라면 수박을 입에 넣어주어야지 ‘수박 맛에 대한 온갖 서술’을 어디다 쓰겠느냐는 투다. 애초에 이런 허례허식으로 맞이하지 않고 평상심을 그대로 보여주었더라면 이런 화를 자초할 리 없었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을 ‘대화상’으로 칭하는 선종본찰의 방장이 외지의 선승을 맞이해 담석을 마련했다면 세속적 담소는 격에 맞지 않는다. 그가 살을 긁어 부스럼을 낼 생각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몽둥이를 들어 쫓아내거나, 입이 열린 뒤라도 입을 쥐어박아서라도 화근의 싹을 잘라야 했다. 아니면 형상이 아니라 법신을 맞이하며 공손히 일어나 합장만 했더라도 그런 수모를 면할 수는 있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도 닫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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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실에서 법담을 나누는 철산 스님과 상현 스님. 관룽 스님(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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