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종교인들이 자비롭고 사랑을 전파하지만 그들이 종교의 독선적 교리에 맞설 용기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평화와 자비는 ‘독선’
인디언 청소와 흑인 사냥엔 ‘예수는 없었다’
■ 조현 기자의 <휴심정> 바로가기
내가 아는 가톨릭 신부님과 수사님, 수녀님, 신자 들의 모습에서 그런 살인과 폭력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신사적이고 사랑이 넘쳤다. 그러나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한 교리적 독선에 맞설 만한 용기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16세기 하이티 섬에서 자행된 원주민 학살에 대해 들은 도미니카 수도회 소속 사제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는 무지한 정복자들을 향해 피를 토하며 질타했다.
“무구한 인종에게 그토록 잔인한 짓을 자행하다니요. 당신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대체 어떤 정의가 인디오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나요?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자기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나요? 그들은 인간이 아닌가요? 그들은 이성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나의 신 외엔 모두 ’악마’ 도그마…독선적 교리에 맞설 용기 있을까
그러나 그런 범죄를 행한 집단이 힘이 있거나 당대의 ‘정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순응하고 이를 돕거나 부추기는 종교인들이 더 많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지상에 사랑과 평화의 역사가 아니라 피의 역사가 씌어지게 된 큰 이유이다.
교목으로서 학생들을 지도했던 조찬선 목사처럼 역시 대광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강의석 군이 ‘종교의 자유’를 요구했을 때 그의 손을 들어주었던 류상태 목사는 많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비리도 문제지만 그리스도교의 문제의 뿌리는 독선적 교리라고 했다. 인류의 평화가 어떻게 깨졌는지를 정확히 살펴보기만 한다면, 미국 인디언 멸망사인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책을 몇 쪽만이라도 읽어본다면 누군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인디언 멸망사를 읽은 뒤 효창공원을 거닐며 한 선배에게 물은 적이 있다. 장난치듯 산 채로 팔과 다리를 베는 것은 동물에게도 하지 못할 짓인데, 어떻게 인간에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그랬더니 선배는 나와 다른 적으로 규정되는 순간, 이미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죽여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고 했다.
나의 신 외엔 모두 악마라는 도그마는 나 이외엔 모두 죽어 마땅하다는 살육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땅 끝까지 전도에 나서며 평화와 자비의 땅을 만들겠다는 구호를 앞세웠다.
선교사를 앞세운 미군들이 운디드니의 인디언들을 거의 몰살시킨 뒤였다. 그들은 부상 당한 인디언 47명을 포장도 없는 마차에 싣고, 혹심한 추위 속에 3일 간 방치하다가 교회 예배당으로 데려갔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된 교회 설교단 뒤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자비를.”
악의인지 호의인지 의심해야 할 로마의 밤은 슬펐다
|
로마에서 여성수도자들.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