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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산상수훈을 한 팔복교회. 사제들이 걷고 있는 초원 너머로 갈릴리호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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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공생애 3년 보낸 곳
산상수훈 팔복교회 등 남아
바다로 불리는 갈릴리 호수
사방으로 열린 ‘소통’의 공간
[성서의 현장] 이집트에서 이스라엘까지 ③
이스라엘은 지중해, 홍해, 사해 등 무려 3개의 바다와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과 접해 있다. 또한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3대륙에 걸쳐 있다. 하지만 실상 경상북도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지형이 마치 돌칼처럼 남북으로 448<E36E>나 길게 뻗어 있다.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공생애(성경에 나타난 마지막 3년)를 보낸 갈릴리로 향하다 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이냐’는 항변이 나온다. 가도가도 황무지 사막뿐이다. 사막의 일부는 기온이 낮아지는 계절엔 초원이 펼쳐지는 변화무쌍함을 보인다고는 하지만 사막의 대부분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메말라 있다.
사막은 젖과 꿀처럼 탐닉할 만한 그 무엇도 없었기에 오직 신에게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기원전 <유대 전쟁사>를 썼던 요세푸스도 3년 동안 사막에 머물며 스승의 지도로 수도를 했다고 하니, 당시 유대교 전통에서 사막 수행은 수도자들의 주요 코스였던 모양이다. 사막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며 회개하라고 외친 요한에 이어 예수도 사막에서 40여일간 온갖 유혹을 견뎌내며 처절히 고행했다.
사막 안내를 맡은 손문수 목사(히브리대 성서학 박사과정 준비중)는 “한국에서 온 한 지인이 물을 지고 한나절 정도 걸리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 사막을 횡단하려 나섰는데,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현대식 등산화와 챙이 넓은 모자까지 구비하고 냉수를 준비한 현대의 횡단이 이럴진대 2천년 전 사막 수도자들의 고초가 어땠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슬림들은 아직도 라마단 기간에 사막 수도자와 같은 고행을 한다. 아랍어로 ‘더운 달’이란 뜻의 라마단은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마호메트)에게 코란을 불러준 이슬람력 9월 한 달이다. 순례단 버스의 운전기사인 팔레스타인 사람 이마드는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온종일 사막 도로를 운전하며 고행에 동참하는 그의 차 안에 있으려니 사막 수도자들의 갈증이 더 깊게 느껴진다.
그런 사막을 지나 갈릴리호수를 만났을 때의 시원함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둘레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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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잇배가 떠 있는 갈릴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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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세상적 유혹과 권세를 이기고 신과 합일한 사막을 버리고 왜 이처럼 이스라엘에서 가장 ‘물 좋은’ 곳으로 왔을까. 호숫가 야산과 언덕엔 포도밭과 올리브밭 사이로 푸른 초원이 보인다. 이처럼 작물들이 풍성한 곳이어서 유대인들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한 이후 집단농장인 키부츠를 처음 만든 곳도 이 호숫가다. 언덕엔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오병이어교회, 산상수훈을 한 팔복교회, 부활한 이후 베드로에게 전도를 명한 베드로수위권교회 등이 있다. 예수의 고향 나사렛과 유대문화의 중심지였던 치포리도 인근에 있다. 나사렛에 살던 예수는 유대 현자들이 모여 있던 치포리로 가서 목수일을 하며 유대문화의 정수와 문제점들을 간파했을 것으로 보인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갈릴리에는 240여개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부터 생명의 원천인 물이 풍족한 갈릴리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사람이 많으니 그곳엔 약자와 병자 등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예수는 사막의 동굴에 은거하는 대신 사람들이 많고, 그의 손길을 부르는 이곳으로 나왔다.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유대교) 회당에서 가르친(마태복음 9장 35절) 교사이기도 했던 예수의 가르침에 등장하는 대부분은 갈릴리 사람들이요, 물고기와 포도주와 올리브 등도 갈릴리 생산물들이다. 새에덴교회 이종민 목사는 “사해의 물은 사방이 막힌 채 고여 사람이 마실 수 없는 소금물이 되었지만, 갈릴리 물은 사방이 소통돼 스스로 정화되어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생명수가 되었다”고 말했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높이에 눈을 맞추고, 소외된 자와 빈자와 병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안아주었던 예수가 살던 곳. 이처럼 작은 그 갈릴리는 왜 바다로 불렸을까. 갈릴리는 갇혀 있지 않고 사방으로 열려 소통했기에 세상의 대해와 통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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