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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크렘린궁 입구 성바실리성당 앞에서 함께 선 순례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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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창] 6대종단, 러시아정교회 순례기
5박6일 러시아를 함께 순례한 한국 6대종단 대표 종교인들을 동행 취재했다. 국내에서 종교간 갈등이 표출되기도하지만, 성지순례 동안 이들은 어느 벗들과 다름 없이 서로 배려하고 장난스럽게 어울려 웃음을 자아냈다. 종교는 자유롭기보다는 엄숙하고 열려있기보다는 폐쇄적이란 인상을 주기 쉽다. 사람들은 그런 이미지가 지나친 집단을 흔히 옛 소련의 본산이었던 ‘크렘린’에 비유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 수장들이 크렘린을 찾았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주최로 지난 19~24일 러시아를 방문한 ‘러시아 종교 체험 성지 순례단’이었다. 다양한 차림의 종교인들이묵은 격식 파하고 어우러지자
화해의 기운이 날갯짓하며
보는 이들까지 들썩거렸다 개신교 장로인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때 ‘종교 편향’을 성토한 조계종의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협의회 대표회장으로 참여했다. 불교계에 맞서 ‘정부 예산의 불교문화재 지원’ 비판에 앞장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선 홍재철 회장이 불참했지만, 배인관 사무총장이 함께했다. 그러나 붉은광장 입구에서 이들을 기다린 것은 인생은 아름다움만 찬미하기에도 짧다는 듯이 빼어난 성바실리 성당이었다. 9개의 양파형 돔이 저마다의 색깔로 어우러진 건축물은 다양한 종교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순례단의 최연장자인 한양원(90)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을 한 젊은 스님이 손을 잡고 붉은 광장을 가로질렀다. 자승 스님의 시봉(비서격)인 선혜 스님이었다. 자승 스님으로부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순례기간 내내 한 회장님을 불편 없이 잘 모셔라”고 당부를 받은 스님이 한 회장이 쓰러지지 않도록 손을 꼭 붙든 채 걸었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노인과 승복을 입은 승려가 부자지간처럼 손을 잡고 걷는 풍경이 붉은광장을 혈기 대신 온기로 채웠다. 그 옆에서 한기총의 배 총장과 김종호 장로가 자승 스님과 셋이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할 때 그곳은 열린 광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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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크렘린 내 성당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승 스님과 한양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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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학교 교장의 눈물에 서린 동포애 이번 순례단의 첫 행선지는 러시아정교회가 아니었다. 모스크바의 베젠스키에 있는 한민족학교였다. 1992년 설립된 이 ‘고려인’(러시아의 한인) 학교는 러시아 80여개 소수민족 가운데 최대인 타타르인들의 학교와 유대인 학교와 함께 모스크바에 3개뿐인 소수민족 학교 가운데 하나다. 초·중·고생 700명인 이 학교는 이제 러시아인 65%를 비롯해 53개 민족이 어우러진 명문 국제학교로 부상했다. 이민 4세인 이 학교 설립자인 엄넬리(73·한국명 엄원아) 교장은 순례단을 반갑게 맞으며 “러시아에서 늘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주눅들어 살다가 91년 꿈에 그리던 고국을 방문해서도 한국말을 못해 눈물만 흘리고 돌아온 뒤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한민족학교를 설립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동포들을 만나면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노 교장의 고백에 6개 종단의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를 잊은 채 이 순간만은 ‘동포’로 하나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 당시 여러 종교 수장들이 종교의 벽을 넘어 ‘동포’란 이름으로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나라에선 종교인들에게도 자신의 종교와 민족이라는 두 개의 바퀴가 있었다. 비폭력적 종교인 불교조차 임진왜란 때는 승병을 일으켜 조국 동포를 지키기 위해 나섰고, 개신교는 동학과 대종교 등 민족종교들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우리나라의 종교인들에겐 자기 종교뿐 아니라 민족 동포도 수레를 끄는 주요한 바퀴중 하나인 셈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다종교국가인 한국에서 팔레스타인이나 스리랑카 같은 종교분쟁에 이르지 않고 ‘종교간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한민족으로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민족의 평화와 행복이라는 같은 꿈을 공유했기에 가능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7개 종단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를 두고 이런 화해의 전통을 잇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10년부터 문화부의 후원을 받아 매년 한차례씩 이웃종교를 순례하고 있다. 이번 러시아 기독교성지 순례는 첫해 기독교유적지인 이스라엘·로마 교황청에 이어 캄보디아 불교유적지, 중국의 유교 성지에 이은 네번째였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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