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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31일 중국 간쑤성 둔황의 모래산인 명사산을 올랐다.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사막을 걸을 때는 앞에 가는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힘이 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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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실크로드 순례기
위구르족 아이들의 맑은 눈
쌍봉낙타들의 평온한 미소
스님은 험난한 사막을 넘으면서
욕심이 많았음을 깨쳤다고 했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고운 모래에서
자신을 버리는 법을 배운다
지난 8월27일 중국 시안(서안)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9명의 비구·비구니 스님과 함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이 마련한 7박8일 일정의 ‘실크로드 불교유적순례’는 시안을 출발해 톈수이(천수), 란저우(난주), 둔황(돈황)을 거쳐 투르판과 우루무치까지 3000㎞를 이동했다.
‘모래가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은 명사산에서였다. 실크로드를 오간 수많은 이들이 걸었던 이 길에서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고운 모래가 발을 계속 잡아끌었다. 이글거리는 태양볕이 뜨거워 스카프로 칭칭 감은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생각보다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쌍봉낙타 여러 마리가 평온한 미소를 띠며 한가롭게 지나갔다. 다시 한번 힘을 내 걸었다. 마음의 여유를 찾자 오아시스(월아천)의 푸르름보다 사막 위에 떠 있는 하늘의 푸르름이 더 아름다웠다.
스님이 된 지 15년째인 한 스님이 모래산 위에서 말했다. “나를 돌아보러 이곳에 왔다. 사막을 걸으면서 내 욕심을 보았다.” 또다른 스님은 “단순한 모랫길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 같다”고 말했다.
시안을 떠나 첫번째 석굴이 있는 톈수이로 가는 고속도로 위, 검은 밤하늘에서 별이 반짝거렸다. 인도로 가던 유학승들은 석굴을 들러 기도를 하며 순례를 이어갔다. 우리도 혼자서는 가기 힘든 석굴들을 주로 찾았다. 톈수이의 맥적산 석굴, 란저우의 병령사 석굴, 둔황의 막고굴 등 석굴들은 깊은 산속에 있었다. 덜컹거리며 비포장도로 위를 한참을 달렸다. 보릿짚을 쌓아놓은 듯한 맥적산의 깎아지른 절벽 위 큰 불상이 순례객들을 압도했다. 황하의 누런 물과 맑은 물이 합쳐지는 유가협(류자샤)댐 안을 한 시간가량 보트로 건너야 도착할 수 있는 병령사에서도 대불이 스님들을 맞았다.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인도 옷을 입은 고행상도 봤다.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불교문화재인 둔황 막고굴에 도착하자, 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한국불교사연구소 책임연구원)가 설명했다. “257굴과 259굴은 북위시대 석굴로 중국 전통 집 모양으로 천장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특히 259굴은 입술에 살짝 미소를 띤 ‘동방의 비너스’가 모셔진 곳이에요. 미소를 잘 봐주세요.”
북위시대 불상은 갸름했다. 당나라의 불상은 통통하고 풍만했다. 이 지역을 오래 지켰을 유목민족의 모습을 닮았다. 돌도 나무도 없이 흙만으로 불상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신앙심에서 경외심이, 채색이 남아 있거나 변색된 벽화에서는 시간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많은 불교유적들을 강탈해 간 서양의 탐험가, 학자들의 흔적에 스님들은 아쉬움에 탄성을 질렀다.
전에 둔황을 찾은 적 있는 성천 스님은 “신심이 깊지 않으면 이런 험한 사막에 아름다운 벽화를 남길 수 없다”고 했다. 문수 스님은 “불화를 보려면 둔황을 다녀와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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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간쑤성 유원역을 출발한 야간열차가 9월1일 아침 7시30분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르판역에 내렸다. 6인실 침대칸에서 쪽잠을 자는 것도, 낯선 중국 남자와 바로 옆 침대에 누워 자는 것도 익숙해지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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