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이야기
황해도 풍천에 ‘안 서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축지법과 변신술을 배우기 위해 도사를 찾아 산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가르치던 스승이 외출을 했다. 안 서방은 몰래 스승의 방에 들어가 도술서를 읽고 그대로 하자 순식간에 짐승도 되고 새도 되었다. 안 서방은 이제는 도통했으니 더 배울 것이 없다며 하산했다. 하산하자마자 즉시 그는 변신술을 사용해 뻐꾸기가 된 뒤 자기 집 우물가 버드나무에 올라앉아 아내가 나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안 서방은 아내가 문으로 들어서자 “뻐꾹, 뻐꾹”하고 울었다. 그러자 아내가 나무를 쳐다보며 물었다. “여보, 뭐 해요?” 안 서방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여보, 내가 뻐꾸기로 보이지 않소?” 그러자 아내가 “당신 미쳤어요?”라고 대꾸했다. 그 후로 동네 사람들이 안 서방을 ‘안뻐꾸기’라고 불렀다. 요즘 이전보다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고 자신에게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치장을 하고 포장을 해도 본질은 변화가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번 4·13 총선에서 국민은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정치권이 변화를 하지 않으니 국민이 먼저 변화한 것입니다. 국민은 정치권을 향해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따라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집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복지에 둘 때 좌익으로, 성장에 우선순위를 둘 때 우익으로 나눕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은 이번 국민의 선택이 무엇을 더 바라는가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의 속도를 두고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더럽혀진 물웅덩이를 어떻게 깨끗한 물로 바꿀 것이냐를 두고 진보와 보수를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진보는 흘러들어오는 물과 흘러나가는 물의 속도를 빠르게 해서 웅덩이를 빨리 정화하자는 것이고, 보수는 서서히 해서 웅덩이를 깨끗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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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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