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이야기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애초 가진 것 없이 태어났는데 살다 보니 큰 빚까지 지고 말았다. 빚 독촉에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했고, 끝내 아무도 살지 않는 깊은 숲으로까지 숨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황망하게 헤매다 문득 멀리서 번쩍하는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저게 뭐지?’ 아, 그건 아주 커다란 보물상자였다. 믿을 수 없는 횡재다. 보물이 넘쳐나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고 뚜껑은 채 닫히지 않았다. 그런데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연 순간 사내는 기겁하고 말았다. 보물상자 안에 웬 남자가 한 사람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뚜껑을 열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사내는 당황해서 허리를 깊게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나는 상자가 비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보물상자에서 부리나케 멀어져갔다. 백 가지 비유를 담고 있어 ‘백유경’이라 불리는 경에 담긴 이야기다. 그런데 보물상자 속 사내는 대체 누구일까. 뜻밖에도 상자 속에는 사람이 아니라 거울 하나가 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보물 위에 놓인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것이었다. 이 경에는 항상 이야기 끝에 각각의 소재가 비유하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도망친 사내는 인생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다니는 우리들 보통 사람이다. 들판을 헤매고 다닌다는 것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보물상자를 발견했다는 것은 자신이 바라던 지위에 올랐음을 비유한다. 그런데 그 속에 거울이 들어 있다는 설정이 절묘하다.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보물상자에서 물러난다는 비유는 또 어떤가. 성공을 향해 나를 잊고 죽어라 뛰어왔고, 그래서 갖은 고생 끝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는데 거기까지는 좋았다.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 그만 ‘나’를 봐버린다는 게 문제다. 세상이 조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요즘처럼 어지러운 적도 없었을 게다. 돈에 눈이 멀어서,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해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다 못해 주검까지 훼손하고 있다. 이럴 때 이른바 사회 저명인사, 지식인들이 등장해서 양심과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는 목소리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동경해 마지않던 이들까지 우리를 실망시키고 한술 더 떠서 부정과 범죄에 앞장선다.
|
이미령(불교칼럼니스트)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