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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6 20:03 수정 : 2005.12.07 14:02

일우 선사의 유일한 상좌 정원 스님이 25년째 은거 중인 천안 태화산 평심사에서 스승을 회고하고 있다.

세상 모르게 설파한 불법… 무게가 삼천근

<깨달음의 자리> 마지막 편 점을 찍으러 충남 천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승가에서 ‘엉덩이에 뿔난 소’처럼 괴팍스런 스님을 불러 괴각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괴각 정원 스님(53)을 만나러, 그것도 불청객으로 가는 때문이다.

정원은 충남 천안 광덕면 매당리 태화산에 25년째 홀로 은거하며, 선종의 결정판인 <벽암록>과 불법의 ‘현묘한 도리’를 밝힌 글을 모은 <현구집>, <태화당 수세록>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그가 쓴 책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입소문만이 선객들 사이에 나도는 은둔의 수행자다.

그 정원은 일우 선사(1918~1989)에게 출가한 유일한 상좌다. 일우는 선승들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다. 방장이나 조실은 커녕 주지 살이 한 번 한 적이 없고, 절 한 칸, 책 한 권, 법문 한 자 남긴 게 없다. 오직 그를 만났던 이들에게 소리 없이 불법의 인을 심어놓았을 뿐이다. 고교 시절 일우를 만나 발심하게 된 씨앗들이 바로 일년 내내 산문을 철폐하고 정진하는 조계종 특별종립선원 봉암사 선원장 정광 스님(63), 20여 년째 지리산 고지 상무주암에서 홀로 정진 중인 현기 스님(63), 그리고 정원 스님 등이다.

절 한칸·책 한권 안남긴 채… 조용히 입으로만 불법 설파
석달간 한숨 안자고 책 독파… 열반 땐 “할말 없다” 입 ‘꾹’

상무주암의 현기 스님은 일우에 대해 묻자 “그 분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평생 남 모르게 살다 가신 분이니, 그렇게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학식이었다고 할만함에도 열반 때 열반송을 묻는 이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입을 다문 일우였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정원도 그와 인연이 있는 선승을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소식만을 전해주었다. 그렇지만 뜻이 있으니 길을 갈 밖에. 태화산의 한 골짜기로 접어들어 끝까지 오르니, 세속과는 다른 별천지다. 두레박처럼 둘러싼 산 가운데 아담한 대웅전과 서재와 잔디언덕과 연못이 한 폭의 그림이다. 평심사다.

“난 우리 스님(일우)하곤 달라. 말 귀도 못 알아듣는 놈들한테 말은 해서 뭐해” 그의 첫마디였다. 그를 종종 찾던 한 여신자가 “남편 사업이 부도나게 생겼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물음에 “망할 것은 빨리 망해야지!”라고 했다는 정원에게 어찌 세간의 대접을 원할 것인가.

그의 불 같은 성정은 스승을 닮은 것이라고 한다. 정원이 일우를 만난 것은 18살 때였다. 불법을 알게 된 그가 도를 찾으러 노심초사하자 먼 친척이 일우를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일우는 부산 구포에서 다 쓰러져가는 초가의 방 한 칸에 머물고 있었다.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일우는 속리산 법주사 지산 스님에게 출가해 옛 고승들의 선어록을 파고 들었다. 일우는 않아만 있는 것(좌선)을 병신 짓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석 달 간 아예 한 숨도 자지 않고 책을 볼만큼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진력과 집중력을 지녔다.

일찍이 공부에 힘을 얻은 일우는 그 뒤부터는 산승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속인도 아니었다. 그는 젊은 비구니와 살림을 차려 그처럼 세간의 초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돈을 줘도 쓸 줄 모를 만큼 불법 외엔 세속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비구니에서 환속한 보살이 그 집에서 하숙을 쳐서 살림을 도맡았다. 일우는 세속에 나오기 전 절에 살면서도 출가 승려가 시줏밥을 얻어먹기 위해선 해야 할 기본적인 염불조차 못해 탁발 나가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고 한다.

머리도, 수염도, 손톱도 깍지않아, 답답한 보살과 제자들이 깎곤 했다. 그는 세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씻지 않으면 때가 끼어 답답해서 어찌 사느냐”고 물으면 일우는 “먼지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있던 제자도 도망갈 법한 그런 일우에 대해 정원은 한 번도 (스승으로서) 의심해 본적이 없고, 그를 보고서야 이 세상에도 ‘현묘한 도가 실재함’을 직감했다고 하니, 숙연이 아닐 수 없다.

일우의 목소리는 호랑이가 포효하듯 우렁차 100미터 밖에서도 뚜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 선승들만이 그를 알아보고, 통도사, 송광사 등 대찰로 그를 초청해 법을 들었고, 그의 초가를 찾아 법을 물었다. 당시 그와 당대에 알려진 고승들의 법문을 번갈아 들은 선승들은 양쪽을 유치원생과 대학원생 차이 정도로 비교하곤 했다.

그는 누군가 불법을 들으러 오면 하루고 이틀이고, 아예 잠도 자지 않고 법을 설했다. 그러면서도 불법을 벗어난 사담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원이 사는 이 곳에 일우가 열반 전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비둘기호를 타고 10시간 동안 온 일우는 밤 새 한 잠도 안 자고 정원에게 법을 설한 뒤 아침에 공양(식사)을 들고 다시 역을 향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한 번 말문이 터지니 오줌 쌀 틈조차 주지 않는다. 그가 쥐어준 무려 4천여 쪽에 이르는 저서 석 질을 짊어지고, 다음에 또 만날 기약까지 하고 산문을 나서니 산문을 오를 때 ‘무거웠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인가. 천근 같던 마음들도 일우의 몸에 붙은 한갓 먼지였던가.(끝)

천안/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내면의 빛 환히 밝힌 33인 선사들의 발자취
‘깨달음의 자리’ 연재를 마치며

지난 1월에 시작된 <깨달음의 자리>가 33회 일우선사편으로 끝을 맺었다.

자신의 내면은 도외시 한 채 끝없이 외연의 개발과 성장과 확장, 승리만이 ‘진리’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조용히 내면의 빛을 밝힌 선지식들의 삶을 통해 현재를 성찰해 보려는 기획이었다.

따라서 이 시리즈에선 이름도, 자취도 남기지 않은 채 살다간 고승들의 조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속적인 명예와 지위, 성장의 욕구에 요즘은 종교조차 ‘구속’된 세상인 때문이다.

내면의 빛 밝힌 선사 33인 지월 선사, 우화 선사, 금봉 선사

이 가운데는 신문과 잡지에 한 번도 조명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선승들에게도 생소한 선사들이 상당수였다. 만공 선사가 자신은 뒷방에 물러나고 조실을 맡겼으나 40살도 되기 전 열반한 보월 선사, 해인사 계곡에서 몸을 씻고 벗은 그대로 바위에 앉아 열반한 담배도인 금봉 선사,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고 생살을 째고 갈비뼈를 드러내는 수술을 초연하게 받은 보문 선사,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 결사를 마치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뒤 홀연히 자취가 끊어져 버린 제선 선사, 40여년 간 묵언하며 한 밤에 좌선 중 방광을 하곤 했던 계룡산 도인 석봉 선사, 해인사 조실을 지내고 70대에 20대 보살과 살림을 차려 살면서도 불법에 당당하기만 했던 혼해 선사, 그리고 일우 선사 등이다.

또 당대 최고의 도인으로 추앙받으면서도 기록이 전혀 없는 수월 선사와 평생 법문 한 번 하지 않고 일만 했던 벽초 선사, 천진도인 우화 선사와 인곡 선사, 인욕 보살로 수행자의 사표였던 지월 선사, 혜봉, 정영, 철우 선사 등도 산중 선승들의 고증에 의해 묻혀질 뻔한 실화들이 세상에 드러났다. 성철과 청담, 구산, 서옹, 서암, 청화, 숭산 선사 등은 책도 많이 출간되어 이곳에선 다루지 않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한 선사들의 대부분은 명예와 돈, 성공 같은 세상적 가치에 초탈했고, 이름을 드러내는데 무관심했다. 오로지 인연이 있는 이들을 소리 없이 헌신적으로 도우며, 그들이 이미 구원돼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했다. 탐(욕심), 진(분노), 치(어리석음)를 여읜 그들의 삶은 혼돈한 세상 속 어딘가엔 이런 이들이 언제나 ‘머물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이 취재엔 많은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특히 자신은 물론 스승의 이름조차 드러내기를 원치 않음에도 간곡한 청을 물리지 않은 선승들이 없었다면 이 시리즈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자의 아둔함이 선사의 그림자를 더럽히지 않았는지 두려울 뿐이다. 결코 더러움에도 두려움에도 물들지 않는 33명의 선사는 <인터넷 한겨레>의 필진네트워크 ‘조연현과 함께 쉬는 휴심정’(wnetwork.hani.co.kr/joadajoa)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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