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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6 15:50 수정 : 2006.11.06 16:30

60년대 ‘파독 간호사’ 대부 이수길 박사

김형욱 당시 중정국장 편지도 공개

‘간첩 혐의가 있다’며 독일에서 한국으로 납치됐다. ‘간첩활동을 자백하라’는 중앙정보부의 협박에 시달리며 전기고문까지 견뎌야 했다. 한 달 동안 온갖 고문을 해도 결국 간첩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국가는 그를 풀어줬다. 가해자는 편지 한 장 보내 고문 피해자를 위로한다. ‘어쩔 수 없이 잡아들여 조사했는데 간첩이 아니더군. 미안하게 생각하고, 조사 받느라 못받은 임금 대신 돈 몇 푼 줄테니 받으라’고.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가 마비된 피해자는 고문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마저 못쓰게 됐다. 몸은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게 됐고, 여지껏 ‘간첩 혐의를 받았다’는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은 채 낙인처럼 남아 있다.

‘재독 간호사의 대부’인 이수길(78) 박사가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돼 겪은 고초를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이 박사는 6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상대로 피해배상 청구소송을 낸다고 밝혔다. 1967년 한국으로 납치돼 중앙정보부에서 고문 수사를 받고 난 뒤 숨진 김형욱 당시 중정 국장으로부터 받은 편지도 공개했다.

“…40일간의 보수를 받지 못하셨다니 본인으로서는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본인이 최 서기관을 통하여 약소하나마 200달러를 최 서기관에게 보냈으니 촌지로 생각하시고 소납하시길 바랍니다. 이 박사의 그 굳은 의지와 국가를 위하는 애국의 정은 본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만 금번 사건 취조 당시 김○○ 의사의 증언에 의하면 수사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우리로서는 부득이 소환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심증이 갔던 것입니다…” 숨진 김 전 국장이 수사 직후 이 박사에게 편지를 보내 ‘간첩혐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사과했다’는 증거로 이날 40여년 전 받은 편지를 공개한 것이다.

이 박사의 기자회견 소식을 들은 뭇 사람들은 ‘이제 다 지난 사건인데 왜 뜬금없이 동베를린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릴지 모른다.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조사를 마쳤고, 지난 1월 “관련자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하면서 동베를린 및 북한 방문, 북쪽 인사로부터의 금품수수 등을 통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맞다. 그러나 중정은 단순한 대북 접촉 및 동조 행위에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했다”고 발표까지 했다.

세상은 동베를린 사건을 그렇게 ‘정리’했다. 세상은 피해자 아무개가 당시 사건에 연루돼 ‘간첩 혐의를 받은 인물’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피해자인 이 박사는 그처럼 간단하게 다 지난 일로 정리할 수가 없다. 강산이 네번 바뀌는 동안 그는 여전히 주홍글씨를 떼어내지 못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다.

김형욱 중정국장이 이수길 박사에게 보낸 편지1

이 박사는 이날 “국가를 상대로 명예회복을 위한 피해배상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다. 배상금을 받으면 공정보도를 촉구하는 의미로 한독협회와 한국기자협회에 보상금 전액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동베를린 사건은 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작곡가 윤이상을 비롯해 동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학생과 지식인을 비롯한 국내·외 인사 203명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간첩행위와 사회주의 정권 수립 활동을 했다고 발표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기획 공안사건이었다. 당시 66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23명에게 간첩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1970년까지 모든 관련자들이 석방됐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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