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이 인용한 문단과 같은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서 ‘군대 갔다 온 사람은 비양심적인 것이냐’와 같은 사람들의 반응을 참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다. 물론 일상 언어생활에서 ‘양심’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사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이 제공한 국어사전에서도 양심을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일상 언어 감각만을 기준으로 적확한 용어를 포기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사용과 관련해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법률 용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민법상 ‘불법행위’라는 용어에서 일반인들은 뭔가 ‘나쁜 행위’라는 인상을 받게 되지만 ‘불법행위’는 그 도덕적 당부여부와 무관하게 민법 제750조가 정하는 특정한 법률 요건을 충족시키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한 형법상 ‘책임능력’이라는 용어도 단순히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14세 이상의 자로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을 가진 자’만이 책임능력자에 해당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역시 헌법학계와 대법원 이하 각급 법원 및 헌법재판소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용어로 그 외연과 내포가 정립되었으며, 수년간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이제는 언어 대중도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의무가 비양심적이라는 생각을 함의하지 않는 다는 것을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다. 따라서 위에 인용한 국립국어원의 글에서 ‘명문, 일류, 386세대, 명품, 성인가요’ 등과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문단에서 ‘가치판단의 기준에 따라 자의적으로 사용’될 수 있거나 ‘지시대상과 범위가 모호’한 단어들로 함께 논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앞서 밝힌바와 같이 명확한 외연과 내포를 가진 법적인 용어로서 예시된 다른 단어들과는 차원을 전혀 달리한다. 국립국어원은 ‘양심적 병역거부’ 라는 표현을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제공한 국어사전에서는 신념을 “굳게 믿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양심의 정의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임을 고려할 때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병역 거부의 근거를 단지 ‘신념’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헌법재판소의 “헌법상 보호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을 말한다.”라는 판시사항을 참조하더라도 단지 ‘굳게 믿는 마음’은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이라는 의미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우리 헌법 제19조가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근거하는 것이므로 이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서도 용어에 ‘양심’이라는 단어를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인다. 그에 더해 ‘양심’과는 달리 ‘신념’이라는 표현은 그 법률적 의미와 범위가 법률적으로 충분히 논의된 단어가 아니다. 따라서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그 의미가 오히려 더 불명확해질 우려가 있다. 때로는 ‘양심’과 ‘신념’ ‘사상’ 등의 단어의 의미가 유사하게 쓰이는 경우도 많으나 헌법 제19조가 보호하는 ‘양심의 자유’의 보장 범위와 관련해 ‘양심’과 ‘신념’ 또는 ‘신조’, ‘사상’의 관계에 있어 이견이 있는 만큼 병역거부가 어떠한 정의에 따를 경우에도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에 속하는 것을 명확히 하기위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 혹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보다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심적’이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다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표현으로 대체하는 것은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에 더해 국제법상으로도 ‘conscientious objection’ 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확립되어 있으며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번역되고 있다.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 ‘conscientious objection’은 UN 및 그 산하기구들과 국제 NGO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로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용어는 ‘양심적 병역거부’ 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비해 국제법적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담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원어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번역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국내법 뿐 아니라 국제법상으로도 그 근거를 가진 권리이며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통일적 용어의 사용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는 점에서도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보다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보다 나은 표현이라 생각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보다 적절한 표현이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는 국립국어원의 지적과는 달리 명확한 의미를 지닌 법률 용어이며 국제법상의 conscientious objection에 알맞게 대응하는 표현이라는 점,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보다 그 권리의 근거가 헌법 제19조상의 양심의 자유에 있음을 명확히 보일 수 있는 표현이라는 점, ‘신념’이라는 단어는 ‘양심’과 달리 법률적 정의가 논의되지 않아 오히려 불명확한 표현이라는 점,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표현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함의 하는 바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미 정부의 공공문서, 각급 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례, 법학계의 논문 등에 널리 사용되고 여러 사전에 등재되었으며 일반인에 주지된 ‘양심적 병역거부’ 혹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표현을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로 대체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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