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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인 산업연수생 사란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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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인 산업연수생 사란가씨, 한국 떠나던 날
남은 눈 마저 실명 위기“고향서 치료나 가능할지” “고향에 돌아가면 꼭 시력을 되찾길 바랄게. 잘 가, 사란가.”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스리랑카 출신의 이주노동자 세 명이 출국심사대를 빠져나가는 사란가(27)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시력을 잃은 사란가는 멀뚱멀뚱 눈만 꿈뻑거릴 뿐이었지만, 그를 배웅하는 친구들의 눈에는 물기가 스몄다. 친구 니락샤(31)는 “큰 꿈을 품고 왔는데, 몸만 상해서 가는 걸 보니 안타깝다”며 “그나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돈을 모아 스리랑카로 돌아가면 귀금속 세공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안고 2005년 10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사란가. 그러나 한국에 머문 2년 남짓 동안 오른쪽 눈을 잃고 왼쪽 눈도 안 보일 위기에 처한 그는 한국 땅에 꿈마저 떨궈놓은 채 텅 빈 마음으로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코리안 드림’을 꾸며 경기 시흥의 한 도금공장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해 온 그에게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은 지난 5월. 갑자기 한쪽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급기야 아무것도 안 보이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병원을 찾은 그는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병원을 한 번도 찾지 않았느냐”는 의사의 호통부터 들었다. 병원을 찾았을 때 사란가의 오른쪽 눈은 이미 멀어진 상태였다. 담당 의사는 “일을 계속하면 왼쪽 눈마저 시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사란가는 꿈이 있었기에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평소 녹내장 증세가 있던 사란가는 산업용 보안경을 쓰지 않고 작업하다 도금액이 눈에 튀면서 증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그는 “회사에서 처음엔 의료보험으로 치료비를 지원해주다가 계속 일을 하지 못하다보니까 결국 그만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란가가 일해 온 회사 쪽은 “보안경을 지급했지만 사란가가 쓰지 않고 일을 했다”고 밝혔다. 사란가는 “보안경을 쓰면 작업하는 데 불편해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면 대개 한국 임금 기준으로 2년치를 보상금으로 받고, 나머지 노동력 손실분에 대해서는 출신국가 일용직 노동자 임금으로 계산해 보상받게 된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사란가가 애초 녹내장 증세를 보이는 등, 그의 실명이 작업 환경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며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일터에서 내몰렸다.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마저 치료비로 써버려 비행기삯을 마련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은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50여명이 몇 만원씩 모으고 안산이주민센터에서 지원해준 덕에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다. 사란가는 “이렇게라도 고향으로 갈 수 있어 다행이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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